오늘은 호텔 아래층 카페에 앉아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눈으로 좇거나 카페 안 손님들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해서,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드라마 시나리오를 잘 쓰는 방법이었던가? 아니면 소설을 잘 쓰는 방법이었던가. 어쨌든 수업에서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서, 어디 나도 영감이란 걸 한번 받아볼까 싶어서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 잔을 사들고 카페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따뜻하고 푹신한 소파에 앉자마자 맞은편 테이블에 한 쌍의 커플이 앉았다. 동아시아인의 외모를 한 작고 마른 체격의 남자는 검은 머리가 살짝 벗어졌다. 살짝 주름진 얼굴이나 손이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의 옆에 자리한 사람은 다갈색 단발머리를 한 코카서스인 여자였고 역시 살짝 주름진 얼굴이나 손을 보고 남자와 비슷한 나이대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은 테이블 위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는데 곧 여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딱히 들으려던 것은 아니지만 관찰하던 차라 이미 내 귀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친구에게서 온 전화인 듯 그 여자는 "나는 지금 더 나은 내 반쪽과 커피 타임을 하러 나왔어." 하고 말하며 옆의 남자를 보고 싱긋 웃었다. 아이고 닭살.
잠깐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내 남편을 뭐라고 하더라?
한국어로 할 땐 남편, 짝꿍. 또 다른 말은 뭐가 있지? 다른 단어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영어로 할 땐 husband, hubby, other half, partner. 한국어로 할 때랑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이다. 남편, 반쪽, 파트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significant other (중요한 다른 사람)나 better half(더 나은 반쪽)는 알고 있는 단어여도 내가 쓴 적이 없다.
독일어로 할 땐 mein Mann. 설명 필요 없이 그냥 '내 남자'. 역시 직설적인 문화다. 영어에서와 같이 bessere hälfte(더 나은 반쪽)이라는 말도 쓴다.
이 '더 나은 내 반쪽'이라는 말은 알고 보면 참 오래된 말이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와 스타티우스는 작품에서 그 단어를 쓸 때 지금의 뜻처럼 부인이나 남편으로 뜻을 한정하지 않았다. 영혼의 반쪽 같은 가까운 친구를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은 주로 남편이나 부인, 또는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인생을 함께하는 동반자인 상대(이성이든 동성이든)를 그렇게 표현한다.
힐링 에세이 종류의 책을 보면 자주 언급되는 것이 '말에는 힘이 있다'라는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가 결국은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것.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부분이고 인생을 좀 더 밝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실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나 어조를 따라 하는 트레이닝도 있고,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한 부모의 언어생활을 다룬 육아책들도 많다.
요즘 아기를 위해 말 육아책을 많이 읽고 거기에 나온 팁을 따라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해보니 아기한테만 그럴 것이 아니라 짝꿍과 나 사이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언어생활을 했어야 했다. 동네 한국인 엄마 중에 존중하는 의미에서 짝꿍과 서로 존댓말을 하는 경우를 봤는데, 나도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내일부턴 "더 나은 내 반쪽"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길다. 그냥 남편 말고. 그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고마움까지 담은 표현을 찾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