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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19. 2020

편견의 선글라스

 인도계 미국인인 남편과 결혼한 이후 나는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한국이나 다른 여행지에서나, 그리고 전 세계 인종이 모두 모여 산다는 영국의 런던에 살면서도 그건 변함없었다. 몇 년 전 통계 자료에 의하면 런던 시민 세 명 중 한 명이 외국 출신이라던데, 그런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의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피부색이나 종교를 암시하는 차림 – 히잡이나 터번 등 옷차림 – 이 주요 단서(?)가 된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에 이미 유학 생활을 하며 십여 년을 유럽의 몇몇 나라 – 독일, 스페인, 체코 - 에서 살았다. 그때 현지인들은 나를 후하게 돈 쓰고 가는 수많은 동아시아인 관광객 중 한 명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수수한 차림으로 백화점에 가도 점원들은 항상 친절했고, 여행지에서든 공항에서든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부닥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여행하면서부터는 달랐다. 런던의 공항 검색대를 지나면서 종종 따로 불리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공항 직원들은 나를 따로 불러 손으로 다시 몸수색을 하고, 남편이 없는 곳에서 내게 여러 가지 질문 공세를 펼치곤 했다.


 “같이 여행하는 저 남자와는 무슨 관계입니까? 종교는 무엇입니까? 저 남자가 종교를 강요한 적이 있습니까? 저 남자의 짐을 대신 운반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내용으로 미루어봤을 때 결국 나의 안위를 위한 질문인 것은 확실하나, 이 모든 질문을 던지게 된 바탕에는 내 남편이 위험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생각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런 짐작을 했을까? 바로 외모다. 특정 지역 출신,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외모를 기준 삼아 그와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사하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 이 일을 겪었을 때, 여행지로 가는 비행 내내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착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아닌가. 다 같은 사람인데 인종이라고 구분을 짓고, 스테레오 타입 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며, 그것을 절대적 진실인 양 퍼뜨려서 편견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씁쓸한 현실이 이런 일을 겪고 서야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음악회에 갔다가 지인을 만났다. 한국인인 그녀는 영국인 남편, 아들과 함께였고, 나는 처음 만나는 그녀의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8살 아들이 자신의 엄마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우리 부부를 보고 활짝 웃으며 물었다.


 “아줌마랑 아저씨도 한국인이에요?”


 아이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우리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이 나중에 말하길, 당황해서 그때 아이에게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본인도 기억이 나질 않는단다.


 우리 - 이미 편견의 선글라스를 낀 어른 - 의 눈으로 본다면,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큰 눈과 어두운 색 피부를 가진 내 남편이 한국인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테니, 한국인이냐고 묻지도 않았을 터였다.

    

 영국에서 인종 차별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말이 있다. "Children are colour blind."(어린아이들은 색깔 구분을 못한다) 그게 무슨 소리였는지, 이 아이를 보고 나서 알았다. 8살 J의 눈에는 피부가 더 하얗든지, 피부가 더 검든지 간에 그 사람은 자신과 똑같은 한국인일 수 있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과연 몇 겹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까. 그동안의 인생에서 배웠다며 오만하게 내 단편적인 경험을 성급하게 일반화하지는 않았나. 편견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었을 테고. 단순한 질문을 하며 해맑게 웃던 J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마음에 걸쳐진 선글라스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오늘따라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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