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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16. 2020

종교인과 사업가

혜민스님 투잡 시대?

 혜민 스님 이야기로 인터넷이 떠들썩하다. 방송에서 보인 그가 사는 집, 소유한 차, 명상 앱 개발하는 모습 등이 우리가 생각하는 "스님"의 일상과 너무 달라서 그런가, 많은 이들이 꽤나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의 민낯을 밝힌다는 유튜버는 그는 무소유가 아니라 풀(full) 소유라며 고생은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뭘 안다고 힘든 우리를 힐링으로 인도하느냐는 요지의 영상을 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미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비꼬아 <돈 벌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니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건물>이니 하는 신박한 제목들이 퍼졌다. 누가 지었는지 입에 찰떡처럼 붙네, 머리 좋다.


 미국 국적자, 하버드에서 종교학 공부를 했고, 책도 쓰고 인터넷은 아주 많이 하며(?)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스님. 나는 그의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지 않고, 또 한국 방송도 거의 볼 일이 없어 그가 SNS상이나 방송에서 자신을 어떤 식으로 브랜딩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예전에 중고책으로 얻어서 읽은 것이 전부다. 고민을 하거나 방황할 때 옆에서 친구가 내 마음을 이해하고 "힘내!"라고 해주는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다만 그 책만의 독특한 내용이라기 보단, 다른 이의 공감을 통해 내 마음을 다독이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 그런 유의 책이라면 으레 해주는, '토닥토닥' 스타일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읽는 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책이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감상이라 강연했던 사실 1, 무려 서울에 건물과 페라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2. 이 두 사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커 놀랍다. 동시에, 그런 내용의 강연을 했다는 게 그가 재산을 가지면 안 되는 이유가 될까 싶기도 하다. 세속과의 고리를 끊고 사는 승려가 그의 직업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긴 하겠다.


 그는 종교인일까 아니면 사업가일까. 그의 마음 치유 학교, 유튜브, 명상 앱 개발 등을 보면 사업가로 보인다. 한국 불교에 실망하고 떠난 유명한 파란 눈의 현각 스님이 혜민 스님을 도둑놈, 기생충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비판하는 걸 보며 혜민스님이라는 사람의 속이 궁금해졌다. 그가 추구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돈? 그의 책을 읽고 위로받았을 수많은 독자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위로와 조언을 해준 적이 있기는 한 걸까? 그 책을 여유롭게 채웠던 단어들이 순식간에 공허함으로 변했다.


 "자신을 사랑하세요"라든가 "자신감을 가지세요" 등은 종교인이 아니어도 해줄 수 있는 말인데 왜 사람들은 그가 한 말에 더 마음이 움직였을까. 아마 그가 입은 회색의 승복. 삭발한 머리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었을지도.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교인"이라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환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치열한 '속세'에서 자본주의에 치이고, 계층 이동 사다리가 부러진 거나 마찬가지인 사회에 사는 우리는, 수행자라면, 이 더럽고 치사한 세계를 초월해 참된 무언가에 더 가깝길, 보다 근본적인 해답을 아는 현자이길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일 년 내내 입는 무늬 없는 회색 옷, 민둥머리, 육식도 안 하고 가족도 꾸리지 않고 절제된 생활을 하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구도자의 모습. 나와 같은 인간이지만 나보다 고귀하고 숭고한 의미가 있는 삶을 사는 것으로 보여, 다니던 성당 대신 절에 가면 어떨까 생각했던 내게 아빠가 친구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아빠 친구는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절에 들어갔다고 한다. 딸과 부인은 속세에 두고 먹고살 길을 찾아 저 멀리 남쪽 지방을 헤매다 얻은 새로운 직업은 스님. 어쩌다가 간 절인데 나름 규모가 있는 절이었는지 승진(?)도 하고 잘 먹고 잘 산다고 했었다. 스님이 되고 나서도 아빠와 만난 적이 있는데, 번쩍번쩍하는 검은 세단을 끌고 내려와 치맥을 하며 이야기를 했다고.


 그 이후 오늘날의 종교인은 그저 수많은 직업 중의 하나일 뿐으로 여기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나름의 환상이 깨진 셈이다. 요즘은 투잡 시대라고 하던데, 종교인이 사업도 하는 것인지, 사업가가 종교를 이용하는 것인지. 투잡 일까? 아니, 결국은 그 둘이 하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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