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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16. 2020

아름다움을 위하여

요가를 포기하던 날의 기록

 연습실 문을 열자 새로운 세상이었다. 바닥의 갈색 카펫은 인도의 모래사막이 되고 뜨거운 열기와 퀴퀴한 땀내는 아지랑이가 되어 사막 위의 나를 어지럽혔다. 이곳은 일명 핫 요가로 알려진 비크람(Bikram) 요가 연습실. 인도의 기후와 가장 비슷한 조건 - 온도 38~42도, 습도 50% - 에서 수련해서 인도에서 고행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하며, 일반 연습실에서 하는 요가보다 3배는 더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아름다움을 찾아 몇 달간 이곳에서 요가를 배웠다.

     

 발단은 여름휴가 후 복귀한 비행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남자 동료 직원이 우리 회사 승무원들은 살을 좀 빼야 한다며 다른 항공사를 예로 들었다. 동남아시아에 기반을 둔 모 항공사의 규정에 따르면 승무원들이 한 단계 큰 치수의 유니폼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두 단계 큰 치수가 필요하게 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단다. 그래서 그 항공사의 승무원들은 심지어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더라도 예전 유니폼을 입을 수 있도록 항상 몸매를 잘 관리한다나.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둘째 치고, 이미 유니폼을 큰 치수로 두 번 바꾼 나는, 이게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속이 뜨끔했다. 휴가 동안 여행지의 맛집을 두루 섭렵하고 돌아온 나는 평소보다 더 두루뭉술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왜 여자한테만 몸매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고 울컥하기도 했지만,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이니 나름 그에 걸맞은 노력은 해야지 싶어 연예인들의 몸매 관리 비법이라는 비크람 요가를 선택했다.

     

 비크람 요가도 장소가 뜨거운 것을 빼면 다른 요가와 수련 방식은 비슷하다. 수련을 시작하자 선생님이 먼저 호흡법에 관해 설명했다. 턱을 내 몸 쪽으로 당기 고선 하아- 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쉰다. 호흡이 독소 배출에 중요하니 모든 자세를 할 때는 이렇게 호흡을 하도록 노력하란다. 단상 위의 선생님이 보여주는 자세를 열심히 따라 하려고 노력했지만 땀이 줄줄 흘러 내 눈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선 무리였다. 선생님은 숨도 차지 않은 지 고른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젠 활 자세. 바닥에 엎드려 양손으로 각각 발등을 잡고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상체와 다리를 들어 올리며 쭉쭉 펴준다. 이 자세는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허리 자세 교정이 되고, 소화 기관에 좋고, 콩팥 기능을 강화하며, 복부 비만까지 없애준단다. 하아- 하고 숨을 내쉬는데 숨이 나가는 것인지 내 정신이 나가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가득하고 팔다리는 후들후들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선생님이 볼 수 있게 손을 들고 눈빛을 교환한 후 요가 매트에 편히 앉았다. 비크람 요가는 탈수 현상이 심하게 올 수 있어 수련 중에도 본인이 한계를 느끼면 이렇게 앉아서 쉰다든가 연습실 밖으로 나가 쉬는 것이 흔한 일이다. 앉아서 한숨 돌리니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약 40명가량의 수련생이 선생님의 자세를 따라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수련생들은 여자들뿐이었다. 평일 점심시간, 식당에 가는 대신 운동을 하러 온 근처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지역은 뉴욕의 월가에 비교할 수 있는 런던의 카나리워프. 아마도 나와 같이 수련 중인 이 여성들은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선 유리 탑 안 투자은행이나 법률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일 터였다. 피부색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런 걸 보면, 여자들에게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매한가지 인가보다.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네들도 “여자는 외모도 능력”이라는 데에선 자유롭지 못한 듯 보였다.


 그들은 한쪽 팔과 한 다리는 수평으로 쭉 펴고 나머지 한 다리로 균형을 잡기 위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이 마치 수련생들이 바비큐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이 사회가 원하는 아름다움의 욕구를 만족하게 해 줄 바비큐. 보고 있자니 괜히 심통이 난다. 이 사회는 왜 여자들에게 아름다운 외모를 요구하는 거지?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 말도 안 되는 도시 속 사막에서 현기증이 일도록 온몸의 근육을 혹사하는 것인지. 나머지 동작을 따라 하는 동안 나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며 구시렁댔다.

     

 원래 인도에서 요가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에서 육체적인 수련과 함께하는 명상 도구, 신비를 경험하기 위한 도구로 발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연습실에서 정말 명상을 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었을까. 이 수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동작을 통해 어느 부위를 효과적으로 날씬하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가에 관심을 보였다. 선생님도 그 요구에 따른 설명을 위주로 수련을 진행했다. 나 또한 명상은 시작도 못 해보고 수련 시간이 끝났다. 요가는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려서 안과 밖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완성한다더니, 마음이 아름다워지기는커녕 몸이 힘든 데서 오는 불만만 가득 찼다.

     

 연습실을 벗어나자 붉어진 얼굴에 닿는 찬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참으로 기쁘게도 길모퉁이를 돌자마자 수련 중에 생각했던 통돼지 바비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푸드트럭의 한쪽에서 돼지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타닥타닥 바싹 구워지고, 주인장은 그것을 잘게 잘라 손바닥만 한 빵 사이에 끼워서 팔고 있었다.


 나는 살을 빼겠다며 사우나 같은 곳에서 고생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망각한 채 바비큐 빵을 하나 샀다. 한 입 먹으니 꿀맛이고 괜스레 불만이 가득 찼던 마음이 풀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 마음의 여유가 나를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름다움을 위해선 아무래도 그냥 꿀맛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할까 보다. 이제 나는 뜨거운 방으로 요가를 하러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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