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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15. 2020

이제 곧 작별할 그대에게

 그대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더라... 첫째 아기 임신 후기로 들어서기 조금 전이었으니 이제 근 2년이 다 되어가네.


 그동안 정은 하나도 들지 않았어. 물론 그대도 내게 그런 걸 바라지는 않겠지. 그저 24시간 함께 했기에 어느덧 내 몸의 일부로 인정했을 뿐이야. 다른 방도가 없었지, 내가 아무리 책을 찾아봐도 책에서 모든 걸 알려주진 않았으니까.


 난 그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고, 그대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도 못했어. 물론 눈치챘을 때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댄 워낙 조용하고, 또 내게 부담을 주거나 하지 않았으니. 사실 잊고 살았어. 어쩌다 한 번씩 그대의 존재를 확인하며 아직 여기 머물고 있었구나 생각했을 뿐. 딱히 그대를 멀리하려는 계획은 없었어. 왜 그런 말이 있잖아. 임신 기간엔 호르몬이 몸을 지배하니까, 호르몬이 주인이라고. 난 그 말을 믿지 않았어. 무드 스윙이라고 하지? 임신한 여자들이 많이 겪는다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난 그런 걸 겪지 않았으니까, 평소와 똑같아서 오히려 남편이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였어. 그러니 내 몸도 호르몬의 변화에 딱히 뭔가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지.


 처음엔 그대의 괴상함에 치를 떨었지. 첫 만남의 충격이 너무 컸어. 그러나 일단 내 눈에 잘 안 보이니까 그냥 무시하게 되더라고. 그렇게 첫째를 낳고 둘째 임신 후. 혹시라도 호르몬 변화 때문에 그대가 어느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지진 않을까 생각했어. 그러나 그대는 여전히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지.


 사실 내가 그대를 미워하지는 않아. 그냥 쭈욱 함께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했었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젠 더 이상은 안되겠어. 마사지의 자극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화를 내니 이젠 우리가 작별할 시간이 온 것 같아.


 내일 외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갈 거야. 그대의 이름은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어. 이제 알았다. 섬유종! Skin-tag. 어쨌든, 나는 통증 없이 의자에 똑바로 앉고 싶으니, 내 엉덩이를 혹부리 영감처럼 만드는 그대와는 결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난 마사지를 한다고 해서 그게 skin-tag의 염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건 몰랐지. 내 한 달 월급의 반을 내고 우아하게 스파 데이를 즐겼는데, 외과 의사를 만나야 하는 결말이라니. 그대가 내 피부에 존재하는 것이 문제인지, 아니면 내가 마사지를 받은 것이 문제인지. 하여튼,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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