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모어, 제1언어. 다 같은 것 같지만 세세하게 따져봤을 때의 의미가 약간 달라서 모국어, 모어, 제1언어는 다 같을 수도, 다 다를 수도 있다. 자체로도 모호한 개념인 데다가 요즘은 이민자나 국제결혼한 가정이 많아서 어떤 언어가 정확히 모어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보인다. 모어가 하나뿐이라고 한정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모어는 가장 처음 배우는 언어를 뜻한다. 태아인 상태에서도 아기는 바깥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니, 부모가 하는 말을 들으며 자연히 배우고, 언어뿐 아니라 부모와 주변 환경을 통해 전승되는 문화적 가치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민족어나 부족어, 방언 같은 것들은 공용어의 지위가 없더라도 모어가 될 수 있다.
언어학에서 모어를 정의할 때 고려하는 사항엔 습득 시기, 숙달도, 사용빈도, 정체성이 있다. 결국 '모어'란, 가장 처음 배웠고, 현재 가장 잘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고, 또 가장 빈번히 사용하고, 내가 일체감을 가지며 타인도 나와 그것의 일체감을 인정하는 언어.
나의 경우, 모어가 한국어이다. 가장 처음 배운 언어였고, 가장 잘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 현재 가장 빈번히 사용하지는 않지만, 내가 일체감을 느끼고 있고 또한 타인도 인정하는 나의 언어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모국어는 거기에 국가의 개념이 들어간다. 태어난 나라의 말(그 나라의 공용어).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언어인 건 모어와 같지만 그 언어가 쓰인 민족 = 민족 국가의 뉘앙스까지 얹혀 있기 때문에 다민족/다언어인 나라들에선 모국어와 모어를 동의어로 쓸 수 없다. 한국은 한 나라에 한 민족이 산다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모어 = 모국어 = 한국어 공식이 성립한다.
제1언어(L1)는 모어와 동일하게, 태어나서 가장 배운 언어이다. 그다음 제2언어(L2), 제3언어(L3), 배운 순서대로 나간다. 하지만 가장 먼저 배운 언어라고 해서 가장 유창한 언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민, 유학, 여러 가지 배경에 따라 어떤 사람들에겐 제2언어나 제3의 언어가 주요 사용언어(dominant language)가 될 수도 있다. 이민자가 많은 요즘, 국가 1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언어 습득의 황금기) 중간에 국가 2로 옮겨 그 이후로 쭈욱 제2언어로 생활한 사람이라면 제1언어보다 제2언어가 유창할 확률이 더 높다. 언어라는 건 학교 수업에서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후 시기에 맞는 경험과 사회적인 맥락을 겪으며 체득하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개념에 대해서 자꾸 질문해보게 되는 이유는 주변에 모어를 찝어내기 애매한 케이스의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내 시댁 가족들을 예로 들어보면, 시아버지의 모어(민족어)는 텔루구. 그러나 모국어(태어난 국가의 공용어)는 힌디/영어이다. 시어머니의 모어(민족어) 또한 텔루구이고 모국어가 힌디/영어. 그러나 부모님의 일 때문에 아기 때부터 북인도에서 힌디를 배우며 자랐고 텔루구를 잘 못한다. 둘 다 미국 이민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주요 사용언어는 영어. 시누이도 인도에서 태어나서 모국어는 힌디/영어. 하지만 부모님 고향과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서 미국으로 이민하기 전 7살이 될 때까지 그 지역 민족어인 칸나다를 쓰며 자랐다. 미국에서 태어난 남편의 모국어는 영어. 민족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지로서의 모어라면 텔루구겠지만, 남편이 태어날 무렵엔 가족들이 미국 생활을 한지도 오래돼서, 집에서 모두 영어만 쓸 때였다. 그래서 남편의 모어는 영어. 주요 사용 언어도 영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하는 부모 밑에서 한국어를 쓰는 환경에서 자란 나는 모국어, 모어, 제1언어 모두 한국어다. 지금은 다른 언어를 쓰고, 가장 자주 쓰는 언어도 영어이다. 한 언어를 쓰는 곳에서 하나만 쓰고 자란 것은 같으나 나와 남편은 차이가 있다. 남편이 여러 가지 외국어를 서로 스위치 하는 시간이 나보다 적게 걸린다. 아무래도 어릴 때 인도의 친척들을 방문해서 텔루구나 힌디를 접한 게, 딱히 제대로 배우지 않았어도 마치 이중언어 교육 환경처럼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여기 홍콩에선 부모가 둘 다 홍콩 출신 홍콩인인데도 서로 대화를 영어로만 하는 케이스를 봤다. 이제 다섯 살이 된 그들의 아기도 영어만 할 줄 안다. 부모 양쪽의 모어가 광둥어이지만, 그 아기의 L1은 영어. 나중에 광둥어를 배운다고 가정했을 때, (물론 언제 배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만) 광둥어는 그 아이의 모어가 될 수 있을까? 모어는 단 하나만 가능한가 아니면 순차적으로 둘 이상도 가능한 것인가.
나는 동시적 이중언어가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아기들을 키우고 있다. 아직 우리 집 언어 상황은 정리가 안된 감이 있어 좀 체계를 잡아야 할 것 같지만 어쨌든 이제 22개월인 첫째는 영어와 한국어를 분리한다. 나에게만 한국어로 말을 한다. 하지만 영어 노출이 더 크다 보니 영어로는 10 단어 이상을 쓰는 문장을 만들면서도 한국어로는 정확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2~3 단어를 연결하는 정도이다. 지금 하는 방식으로 계속 키운다면... 한국어와 영어 모두 아이들의 모어가 될까? 어쩌면 나는 불확실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