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우르르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몸살 기운이 들자마자 덜컥 겁부터 났다. 수시로 체온을 재느라 체온계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잘못 작동시켜서 빨간색 화면이라도 나오면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일부러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음식 냄새를 맡아보고선 아직 후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였다. 나는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닐까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우리 집 헬퍼 이모는 감기인걸 확신한다며 푹 자라고 하고선 참 속도 편하게 누군가가 무료 드림한다는 물건을 받으러 다녀왔다.
같은 동 아파트 미국인 아줌마네 집이었는데, 그 집도 보안법 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애들이 많이 커서 집에 장난감도 많고, 어쩌고 저쩌고... 나는 어질어질해서 대충 듣고 알겠다고 했다. 아줌마가 우리 집에 그런 물건이 없으니 그 집에서 받아 와도 되겠냐며 물건 리스트를 줄줄 읊는데, 대꾸할 기운이 없어서 그러라고 했다. 약을 먹고 낮잠을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어머나, 우리 집 코딱지만 한 발코니에 화분이 줄줄이 놓여있었다. 그런데 이것 참, 하필 화분에 담긴 식물이 모두 산세베리아다.
공기를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사무실이나 집안에 많이 두는 인기 있는 식물 산세베리아, 바로 시어머니의 혀다. 산세베리아를 영어로는 snake plant 또는 mother in law's tongue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테크니컬 하게 보자면 '장모님의 혀'가 될 수도 있긴 하다.) 노르스름한 테두리 안에 거칠게 보이는 짙은 녹색의 무늬가 있고, 살짝 꼬인 부분도 있으며 여러 겹이 주욱 뻗어 길게 자란다. 집에서 키우기 꽤 쉬운 식물이라는데, 어쩌다 이런 환영받지 못하는(?) 이름을 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런던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꽃집 앞을 지나다가 산세베리아를 보고 내가 "어머, 식물 이름이 mother in law's tonge이네요!" 하고 웃었더니, 시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 조심하렴. 시어머니의 혀는 이렇게 날카로울 테니까!" 그런 말을 들었지만, 시어머니와 나는 오히려 사이가 좋은 편이다. 캐주얼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우리 사이임에도, 간혹 산세베리아 잎 끝처럼 뾰족한 말이 오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났던 게 이 식물이었다. 그때 꽃집 앞에서, "난 그럼 이 식물은 키우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는데, 내가 아픈 틈을 타 시어머니의 혀가 우리 집으로 와버렸다. 이런.
소파에 앉아 발코니에 터를 잡고 있는 그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콕콕 불편하다. 몸살을 핑계로 늘어져라 낮잠을 자고, 집 정리도 대충하고 사는 내 모습에 시어머니가 일침을 놓는 것만 같다. 나태하게 지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만. 2020년이 다 가기 전엔 꼭 하겠다며 이것저것 벌려놓은 것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턴 슬슬 미뤄 왔다. 이제 산세베리아에 물 주며 자기반성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우리 집으로 온 시어머니의 혀, 반갑게 맞이 할테니 앞으로 잘 지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