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데이트 품앗이와 얌체 엄마
얌체는 어디에나 있다?!
코로나로 엄마 아빠들이 재택근무하랴 육아하랴 정신이 없다. 아기가 이제 두 돌을 앞두고 있는데, 매일 오전 프리 너서리에 가게 되면 나도 한숨 돌릴 시간이 나겠구나, 드디어 백만 년 만에 자연광 아래서 책을 좀 읽을 수 있겠구나 내심 기대가 컸다. 하지만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 때문에 프리 너서리 대면 수업은 중단되었고 설이 지난 다음에 다시 재개할 계획이란다. 그때까지 전염 상황을 관찰해보고 다시 온라인 수업을 연장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그럼 내 시간도 계속 없겠구나.
아직 어린 둘째는 상관없지만 이미 학교의 맛(?)을 아는 첫째에게 땅콩만 한 홍콩 집 안에서 노는 것은 지루한 일이 되어버렸다. 집에서 만들기나 물감놀이, 피아노 치기 등 나름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 해주고 있지만 사회적 동물인 아이에겐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마침 온라인 수업으로 바뀐 이후 비슷한 나이인 아기들을 엄마들이 대부분 집에서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프리 너서리 대면 수업 재개 전까지만이라도 일단은 이렇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바로 동네 엄마 단체 챗에 파트너 구인 글을 올렸다.
"아기들 아무 데도 안 보내시는 분들,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의 집에서 플레이 데이트하는 거 어때요? 예를 들면 매주 화요일 오전 저희 집에서 만들기, 미술놀이, 음악, 춤추기, 그리고 장난감 가지고 함께 노는 자유놀이 시간도 가진 후 제가 아기들과 엄마 또는 헬퍼 점심까지 준비하겠습니다. 대신 다른 요일에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집에서 아기들이 함께 놀고 시간을 보낼 수 있길 원해요. 제가 타이거 맘이라서 아기에게 이것저것 교육 목적으로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비슷한 나이인 친구들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관심 있는 분은 연락 주세요!"
단체 챗에 글을 올리자 잠시 후에 엄마들에게서 개인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은 동네에도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라는 것. 외모만 각양각색이 아니라 마인드도 그렇다.
엄마들은 내가 어떤 교육적 놀이를 준비할지 관심이 많았다. 이전에 간간이 호스트 했던 플레이 데이트 사진을 보여주고 주로 그런 것들을 한다고 했더니,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하긴, 아기들이 가는 플레이 그룹 수업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활동이니, 우리 집 플레이 데이트에 보내고 싶을 수밖에. 돈도 안 들고, 가서 아기가 점심까지 먹고 오니 집에 오면 낮잠 재우면 되는 것이고. 게다가 엄마 대신 헬퍼를 보낸다면 본인은 그날 반나절의 자유 시간이 생기니 그야말로 최고 아닌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집으로 아기를 보내고 싶은 엄마들이 많았는데, 그들 생각에 다른 건 다 좋은데 걸리는 문제 하나가 있었다. 바로 본인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호스팅을 해야 한다는 것. 그건 또 귀찮았겠지. 문자를 주거니 받거니 시간을 조율하는데, 본인은 워킹맘이라 집으로 불러서 놀이를 하기 힘들다든가... 남편이 재택근무 중이라 힘들다든가... 호스팅 하기 어려운 이유만 늘어놓았다. 핑계는 만들자면 끝이 없다.
나도 워킹맘이고 우리 집에서도 남편이 매일 재택근무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우리 집에서 토요일에 하고 본인 집에선 평일에 하는 것은 어떠냐고 한다. 이미 하고 있는 플레이 데이트에 우리 아기를 껴준다고. 근데 엄마가 워킹맘이라 헬퍼가 플레이 데이트를 할 것이란다. 그래서 그럼 토요일에 우리 집에서 하는 플레이 데이트에는 엄마가 올 거냐니깐 그날도 헬퍼가 온단다. 아니 잠깐. 평일에도 매일 일하고 토요일에도 일하는 것은 아닐 텐데? 토요일, 헬퍼랑 그 집 아이를 우리 집으로 보내면 엄마랑 아빠랑 주말 반나절 데이트도 할 수 있겠구나. 아하. 굿 아이디어. 품앗이하자고 글 올린 건데, 나를 자선사업가로 보는구나 싶었다. 동네 엄마들에 대한 나의 믿음이 위태위태하다.
또 다른 엄마 한 명은 굳이 일요일을 선택해서 그 날 오후에 플레이 데이트를 호스팅 하겠단다. 이 또한 아주 티 나는 얌체 작전이다. 보통 일요일에 헬퍼가 없으니 엄마 아빠들이 다른 집에 놀러 가거나, 친척집에 가는 등 가족 단위의 약속을 많이 잡는다. 그런 약속이 있으면 불참하는 아이가 많을 테니 플레이 데이트 호스팅을 한다 해도 준비하기가 수월하다. 아기들 음식, 엄마 음식을 조금만 만들어도 되고 집도 덜 어지럽혀질 것이 분명하므로. 게다가 온다는 사람이 아예 없으면 본인은 호스팅을 한번 안 해도 평일엔 아기를 다른 집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은가. 아아. 이렇게 얌체 같은 엄마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어찌 됐든, 파트너들과 주소를 교환하고 요일과 시간도 정해서 시작한 지 일주일째. 우리의 육아 품앗이는 아직까진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내게 얌체의 결을 들켜버린 엄마들 몇.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아도 모자랄 시간에 혼자 집에서만 갇혀 지내는 아이가 안쓰러워, 집에서라도 친구들과 함께 놀게 해 주고픈 엄마 마음이 다 같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나 보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얌체 같은 행동을 하는 얌체 엄마들이라니. 그들이 얄미운 건 내가 너무 꼬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