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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Jan 14. 2021

홍콩에 없는 것? 우편번호

 우편번호. 내가 한국에 살았을 땐 여섯 자리였고 지금은 다섯 자리. 독일도 다섯 자리. 영국은 알파벳도 섞여서 딱히 정해진 자릿수는 없는, 어쨌든 나라마다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 우편번호란 주소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우편물의 분류, 배송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나름의 분류 체계에 따라 코드나 번호를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분류 체계의 기준이 다르기는 해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는 것이니, 어느 나라 주소를 쓰든 우편번호를 함께 쓰는 것은 숨 쉬는 공기가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당연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홍콩엔 우편번호가 존재하지 않는다.


 홍콩으로 이사 왔을 때, 여기는 우편번호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서 소포를 받을 일이 생겼다. 카톡으로 주소를 남겼더니 다음날 친구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주소 준 거에서 우편 번호가 빠졌어. 우편 번호 뭐야?"


 "우편 번호 없는데? 여기는 우편 번호 없어. 그냥 주소만 써서 보내면 돼."


 "뭐?! 뭐 그런 동네가 다 있어? 진짜 안 써도 제대로 배송되는 것 맞아?"


 "응, 걱정 마!"


 킥킥 거리며 홍콩에 진정 우편 번호가 없음을 친구에게 설명해 준 다음에서야 우편 번호가 없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자, 나도 홍콩에 오기 전까지는 우편 번호가 없는 곳이 존재할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지 않나? 갑자기 궁금해져서 우편번호가 없는 나라를 검색해봤다. 짧지 않은 리스트에 오른 대부분이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 영국령이나 네덜란드령 섬 같은 곳이나 카타르와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중동 국가들이다. 대부분 면적이 좁든지, 아니면 면적이 넓다고 해도 배송 인프라 구조가 열악하다든지 하는 특징이 있다. 홍콩은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인구가 많고, 인프라도 발전된 곳인데 우편번호가 없는 이유는 뭘까. 심지어 홍콩보다 인구가 적은 싱가포르에도 우편번호가 있는데. 


 홍콩우체국에 따르면, 그들이 우편 번호 없이 한자나 영어로 써진 주소만 가지고도 90퍼센트 이상 상세 주소에 따라 분류할 수 있기에 굳이 우편번호가 필요 없다고 한다. 또한 3백만이 넘는 주거 또는 상업 건물마다 다른 번호를 부여하자면 15자리 숫자가 필요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편 번호 시스템은 홍콩에선 편리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편번호 없이도 잘 오고 가는 홍콩 우편, 지금 보니 신기하다.


 이메일도 잘 안 쓰고, 대부분 핸드폰 메신저 앱으로 연락하는 요즘, 손편지는 더더욱 쓸 일이 없기에 우편번호 쓰는 것은 웹사이트 회원 가입하면서나 온라인 쇼핑몰 배송 주소 적을 때뿐이다. 그래도 때때로 우편번호 칸에 제대로 된 우편번호가 들어가지 않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며 우편번호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지금이 딱 그렇다. 일명 직구.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아기용품을 사려고 이 쇼핑몰 저 쇼핑몰 가격과 물건 종류를 비교해가며 며칠에 걸쳐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구매하려고 하니 배송 주소 이후로 넘어가질 않는다. 이런 상황을 겪는 홍콩 거주자가 많은가 보다. 홍콩 우체국 사이트에 친절하게도 안내가 되어있다. 우편번호를 쓰는 칸이 있을 때엔 000, 00000, 또는 HKG를 쓰란다. 셋 다 적어봤지만 여전히 뒤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우편번호 때문에 쇼핑이 물 건너갔다. 우편번호가 없어 주소가 짧아 간편하고 좋지만, 이렇게 가끔은 불편한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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