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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Sep 27. 2021

상장을 향해 쏴라!

아이 숙제가 엄마 숙제

 아이에게 광동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로컬 학교로 보낼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뿐 아니라 몸도 바빠졌다. 오전에 국제 유치원에 갔다가 오후에 로컬 유치원에 가는 아이의 스케줄 때문만이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 준비 때문이다. 지금 이제 두 살 반. 그러나 벌써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쌓아야 할 나이란다.


 국제학교에서 로컬학교로 아이 학교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한 이후 만난 선배 엄마에게 들은 팁은 포트폴리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상장받은 건 뭐든 다 모아놔야 한다고 했는데, 아니 이 나이에 무슨 대회? 아직 세 돌도 안된, 아기라면 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작은 사람이 무슨 대회에 나가서 무슨 상을 탄다는 것인지. 이런 내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로컬 학교 중에 좋은 학교를 보내고 싶은 욕심이 있는 이상, 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중추절(추석)을 맞아 두 유치원 모두 랜턴 디자인 대회가 있었다. 명절이 돌아오기 2주쯤  우리 아기가 참여하는 첫 대회의 안내문을 받았다. 마감 날짜가 나와있고, 재료와 크기는 제약이 없으니 창의력을 무한대로 발산해보라 쓰여 있었다. 중추절의 의미를 새기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랜턴을 만들고, 그러면서 교감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따뜻한 멘트까지 함께. 그래, 부모와 아이의 교감. 좋다. 어디 한 번 해보자.


 아이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니 아이 손에 들어갈만한 작은 것으로 만들고, 또 장식도 간단한 종류로 해야겠지? 안 그러면 엄마가 만든 티(?) 나니까. 주워들은 정보에 의하면 재활용을 하면 가산점을 준다 했다. 일부러 재활용할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준비하려고 3일 내내 별다방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과일 보호하려고 싸놓는 망이 필요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커다란 배를 한 바구니나 샀다. 그리하여 내 랜턴 디자인에 "재활용"될 재료를 다 준비했고, 드디어 만들기 시작.


 "이제 엄마랑 랜턴 만들자!"


 토끼 랜턴을 만들자고 했더니 아이는 신이 나서 플라스틱 컵 여기저기에 눈알을 붙여댔다. 토끼에 눈이 10개가 달렸다면서... 젓가락을 불에 달궈 램프를 집어넣을 곳과 줄을 달기 위한 곳에 구멍도 뚫고, 꼬리도 붙이고, 수염도 만들고. 나름 랜턴 같은 무언가를 완성했다. (물론 아이가 잠든 후에 8개의 눈은 다시 떼어냈다.) 오래간만에 뭔가 만든 것이라 나름 뿌듯하기도 했고. 바로 사진을 찍어 몇몇 엄마들에게 보냈더니 반응이 좋았다. 상 탈 수 있겠다고, 잘 만들었다고 하는 문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김칫국을 마셔버렸다. 이쪽 엄마들이 어떤 랜턴을 만드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


별다방 컵, 배 망, 열쇠고리 끈, 쓰레기 봉투 묶는 철사로 만든 토끼 랜턴


 유치원에서 중추절 파티를 하는 저녁, 드디어 다른 아이들이 제출한 랜턴을 보았다. 남편도 은연중 상을 바랐는지 꽤나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나는 엄마가 다 만든 티가 날까 봐 일부러 어린아이가 만든 것처럼 만들었는데 여기는 엄마 아빠가 만든 티가 팍팍 나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바퀴가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있는 랜턴도 있고,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치는 랜턴도 있었다. 아니, 이런 걸 2~4살 아이들이 만들었다고? 아아. 역시, 엄마 아빠가 숙제하느라 고생했겠다. 전시된 랜턴들 중에는 어린아이 몸집만큼 큰 로켓 랜턴도 있었는데, 그걸 보더니 친한 홍콩 엄마가 한마디 했다.


 "누군지 몰라도, 저건 상 받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야."


 정말 그랬다. 상장이 얼마나 필요하면 저런 노력까지... 그런데 그게 남 이야기가 아니다. 어쨌든 나도 상이 고픈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니까. 만 두 살 아이들 클래스 대회에서 본 홍콩의 너무나도 뜨거운 교육열. 유치원 천장에 가득 찬 상상 이상의 랜턴들에서 상장을 향한 엄마 아빠들의 간절함이 엿보인다. 유치원 내 대회지만 이것도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홍콩에 와서 교육열 때문에 놀란 처음은 아니지만, 이젠 나도 그 안에서 함께 경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긴장이 된다. 벌써 다음 달 중국 국경절 카드 디자인 대회를 한다고 안내문이 왔다. 이제 2라운드. 상장을 향해 쏘자, 상장받아야 학교 간다!


 만들기, 그리기 못하는 이 곰손 엄마가 홍콩에서 유치원생 키우려니, 참 만만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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