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내 목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다 매력적이지만 특히 내 목소리가 좋다 말해준다.
그러면서 본인은 예쁜 목소리로 말하고 싶은데, 나와 이야기하다 보면 너무나 날것의 목소리가 나와서 민망하단다.
그녀는 목소리도 예쁘지만, 무엇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쁘고, 그리고 말에서 느껴지는 마음이 예쁘다.
그녀와 대화를 많이 하니, 나도 말이 더 예뻐지는 것 같다.
그녀를 더 본받고 싶다.
오늘은 싸이월드이니, 도토리니, 브라운아이즈니, 클래지콰이니 하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옛날 사람들이다.
비슷한 나이에 같은 세대로 살아온 것이 이럴 땐 좋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원래 대화가 잘 통하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
앞으로도 영원히 같은 시간을 밟아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평소보다는 일찍 퇴근을 해냈다.
그녀가 자기 일처럼 좋아해준다.
운전을 할 때마다 그녀 생각이 난다. 그래서 운전을 더 좋아하게 됐다.
오늘은 운전하는데, 그녀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창한 여행지들 위주로 생각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하와이, 독일, 스위스, 일본, 포르투갈, 비행기를 타든 크루즈선을 사든 해야 갈 수 있는 곳들.
적어도 1주일 이상은 휴가를 내고 계획을 짜서 가야하는 일정.
그런 근사한 곳들에 그녀를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녀와 작은 일들을 하고 싶었다.
같이 사는 집에서 피자를 배달시키고 싶다.
그녀가 싫어하는 무서운 영화를 보며 나에게 안기게 하고 싶다.
싸이월드에 나올 법한 노래들을 오랜만에 같이 들으며 옛날 감성에 젖고 싶다.
장 보러 가서, 나는 카트를 미는 동안, 그녀는 야채를 고르다가 나를 뒤에서 안아줬으면 좋겠다.
함께 허름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아, 와플콘을 하나씩 먹고 싶다. 다른 맛으로.
내가 비디오게임을 하는 모습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그녀도 최근 지속된 격무를 조금 쉬고, 이번 주말은 약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마음이 너무 좋다. 그녀는 5-6년마다 한 번씩 크게 아픈 편인데, 2030년에는 절대 아프게 하지 않겠다.
자주는 못 하더라도, 하루 종일 우리 둘 다 신발을 신을 일이 없는 날들을 만들겠다.
그 생각이 나를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게 한다. 숨쉬게 한다.
상상만으로도 더 신나게 일하게 하고, 더 기분 좋게, 푹 쉬게 한다.
그녀와 나는 몇달 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 씨를 한국인 작가이자 방송인 조승연 씨가 인터뷰했다.
조승연 씨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단 하나의 예술 작품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질문했다.
브링리 씨는 세상이 위대한 그림을 못 보게 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예술 작품을 두기엔 비좁은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예술 작품은 웬만하면 가져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좋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꼭 무언가를 가져가야 한다면, 그리스 동전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일리아드, 오디세이 같은 그리스 희곡을 좋아하고, 그리고 주머니 속에 동전을 두고 그 무늬와 홈을 손으로 만지며 2,600년 전 아테네 고전 시대의 물건을 느끼고 싶다고 답했다. 더 좋은 대답이었다.
"That will be very evocative to me." 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evocative' 라는 단어를 썼다.
그 인터뷰를 떠올리며 그녀가 사준 시계를 오늘도 만진다.
그녀가 떠오른다.
패트릭 브링리 씨의 위 인터뷰 내용을 그녀에게 이야기해줬을 때, 그녀도 감동 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사준 시계가 나에게 그런 존재라고 했을 때, 더 감동 받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녀는 완벽하다.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녀는 내가 그 상황에 있었으면 말하고 행동했을만한 이상향대로 그대로 살아왔다.
신기할 따름이다.
그녀는 그냥 본인 스타일대로 한 거고, 스스로의 신념대로 살아온 것이지만, 정말 내가 추구하는 모습이다.
그녀도 분명히 인간이고, 헛점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나에게는 완벽하게만 느껴질까. 큰일이다.
보고 싶다.
그녀의 눈과 입술을 당장 보고 싶다.
그녀의 갈색 눈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녀가 웃을 때 보이는 입동굴에서는 바이올린 소리가 보였다.
그리고 내 가슴에서는 베이스 소리가 들렸다. 두근두근하는 소리.
그런 그녀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다.
그녀가 곁에 없는 동안, 혼자 해내야하는 일들을 더 효율적으로 해내리라.
떨어져있을 땐 한없이 부지런하다가, 그녀와 있을 때는 한없이 자유로우리라.
보고 싶다. 내 이상형, 내 이상향, 내 이상.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