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5,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브런치 8권의 새 장을 연다.

'시작' 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새로운 학기, 새로운 반에서, 새로운 공책에 필기를 시작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역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와 조화를 이루어 담아야 한다.


그녀의 아침은 오늘도 싱그럽다. 아니, 어제보다 더 싱그럽다.

나는 그녀를 수없이 만나고, 매일을 마주칠 때도 있고, 그녀와 하루 종일 소통하는데도,

그녀를 다시 맞닥뜨릴 때마다, 처음 그녀를 만난 것만 같은 새로움을 느낀다.


초반에 교제할 때는, '내가 아직 어색해서 그런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예뻐서 그런가?'

'사귄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내가 긴장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사귄지도 몇년차가 되었는데도, 오랜만에 보든, 다음날 또 보든, 그녀는 항상 새롭다.


그냥 사람 자체가 싱그러운가보다.

'싱그럽다' 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평생 처음으로 찾아봤다.

'신선하고 향긋하다', 혹은 '싱싱하고 생기 있다' 는 뜻이라고 한다.

정말 그녀에게 더할나위없이 어울리는 단어다.


그래서 그녀는 나의 '시작' 이다.

나의 '첫사랑' 이고, 제일 큰 사랑이다.

그래서, 제발 마지막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침이 또 왔다. 그녀는 우리의 아침을 그녀처럼 싱그럽게 열어준다.

오랜만에 운동도 하고, 퍼스널 트레이닝도 받고, 잠시 잃었던 얼굴색도 제 색깔로 돌아왔다.


건강한 땀을 흘리고, 예쁘게 씻고 단장하고, 어김없이 출근도 한다.

회사에 정기적으로 꼭 들어오곤 하는 고구마 박스를, 본가에 보내려 들고 가는 인턴을 마주친다.

인턴이 귀엽고 기특하다며 나와 깔깔 웃고는, 그녀의 고구마 박스에 또 싹이 나기 전에,

그녀의 호의를 갚겠다고 끝끝내 세탁비를 안 받으신 세탁소 사장님께 가져다 드리기로 한다.

오늘도 그녀는 그 누구보다 귀엽고, 그 누구보다 본받을만하다.


그녀로 인해 웃음과 즐거움이 넘치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점심식사를 픽업하러 나가는 길에, 알고리즘으로 '미녀와 야수' OST 의 곡들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내 플레이리스트의 알고리즘까지 바꿔놨다.


인터넷 서비스들은 우리 자신들보다도 우리의 삶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내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예전 나의 음악 리스트는 하드코어한 힙합, 욕이 절반 이상인 가사로 가득찬 노래들이었고,

잔인한 영화, 무서운 영화, 슬픈 영화, 우울한 영화, 혹은 최신 비디오 게임이나 시계가 그득했다.

집 구석구석에는 만화 캐릭터나 게임 캐릭터의 피규어가 늘어나고, 기계들이 널려있었다.


내가 구글에게 '이렇게 바꾸라' 라고 설정을 바꾼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 나의 유튜브는 운동 동영상으로 가득차 있고, 정치 및 철학의 토픽이 중간중간 섞여있고,

영화는 한 달에 한 번도 잘 보지 않게 되었고, 음악을 듣기보다는 조용히 침묵을 더 즐기게 됐고,

게임은 건드리지도 않고, 시계는 커플시계가 아니면 사지도 않고,

피규어나 기계들이 없어진 자리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책들과 그녀와의 추억들이 쌓였다.


음악 플레이리스트 알고리즘도 내가 어떤 여자를 만나고 있는지 아는 것마냥,

디즈니 공주들의 음악들을 틀어준다.

우울한 노래, 슬픈 노래, 잔인한 호러 영화, 무서운 스릴러 영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에도 문학적, 예술적 가치가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넘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보다 감정 이입 능력이 훨씬 뛰어난 그녀를 만났기 때문에 (공감 능력은 지능이다),

분명 우리 둘 사이에선 내가 혼자 맨날 눈물 짓고, 그녀는 오호대장군 장비보다 의연한데도,

나는 그녀가 우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사실 너무나 대문자 F 인 그녀라서,

지나치게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담은 매체는 잘 접하지 않게 되고, 자연스레 피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를 떠나서, 내 삶은 이미 그녀에게 너무 물들어서, 동화되어 버린 것 같다.


그녀는 내가 평생 마주친 사람 중에 가장 디즈니 공주 같은 사람이다. 좋은 의미로.

디즈니의 공주들은 대부분 구조적으로 역경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스스로의 의지로 그걸 타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 노래들에도 투지가 녹아있다.

평온한 상태에서도 듣다보면 벅차고 뭉클해지는 노래들인데,

하물며 낙담하거나, 일이 힘들거나, 오늘처럼 그녀가 보고 싶은 날이면 나에게 더욱 힘을 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즈니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더 추가해본다.

미녀와 야수의 Bonjour (Belle). 뮬란의 Reflection. 인어공주의 Part of Your World.

라푼젤의 When Will My Life Begin. 모아나의 How Far I'll Go.

겨울왕국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 라푼젤의 I See the Light.

알라딘의 Speechless. 겨울왕국의 In Summer. 라푼젤의 I've Got a Dream.

그리고,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미녀와 야수의 Human Again.


브런치에 쓴 적도 있지만, 그녀는 성격도 외모도 기믹도 미녀와 야수의 벨과 굉장히 닮았다.

그래서 야수보다 거칠고, 어리숙하고, 날카롭고, 예민했던 나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도 혼자 보지 못하고, 한강 씨의 책도 힘들어하며 끝까지 읽는,

그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면서도, 그 누구보다 당차고 긍정적인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내 삶도 180도 변화했다.

먹는 음식이 바뀌었고, 습관과 생활 패턴이 변화했고, 건강이 개선됐다.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고, 더 즐겁게 일하고 있고, 승진했다.

너무 확언하기보다는 (그녀는 그런 사람을 싫어한다), 다른 가능성을 좀 더 열어놓는 사람이 됐고,

팩트로 폭행하고 자신의 논리를 내세우며 논쟁에서 이기기보다는, 조금은 더 따뜻하게 말하게 됐다.


무엇보다, 더 행복해졌다.

더 사람답게 살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야' 라고 자아도취하기보다는,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됐다.

오늘도 그녀의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해 성장하며 힘차게 나아간다.


그녀는 나의 삶을 밝혀준, 나의 공주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나의 아침을 싱그럽게 열어주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나를 내 인생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게 해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그 어떤 디즈니 공주보다 예쁜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