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이란, 알고 보면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법이다.
그 사람의 24시간을 함께 하는 유일한 사람은 본인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갖게 될지 알 수 없고,
또한 과거의 몇십년의 삶 또한 어떤 삶이었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녀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는 것만 같고, 어떻게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됐는지 알게 된다.
왜 내가 그녀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더 깨닫게 되고, 그녀의 미래를 더 궁금해하게 된다.
오늘도 우연히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시간 낭비' 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석사 공부를 마치자마자, 그녀는 어떤 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주어진 일 자체가 그녀에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방끈이 충분히 길도록 배운 사람들이, 압박이 크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대체로 그 공간의 공기는 온건했다.
그 중에서도 꽤 까다롭기로 이름난 박사님의 연구실에 배정받았지만, 칭찬을 받으며 일했다.
배정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 출장팀에도 끼워주시고, 잘 적응했다.
그녀보다 나이가 고작 조금 많았을 선배의 까다로운 성격을 조금만 맞장구쳐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녀와 한 방을 쓰던, 회사 노조의 부위원장 왕언니와 고량주를 똑같이 털어마시고 기절한 이후,
멀쩡했던 왕언니는 그녀를 더 챙겨주셨다. 이렇듯 나름대로, 모든 사람들과 즐겁게 지냈다.
하지만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을 고민없이 박차고 나와, 새로운 업계로 옮겼다.
어느 순간부터, 지금 하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이 단조롭고,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끼지 못했는데다가,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서 배울만한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10년을 일하면, 똑같은 일을 10번 하게 될 것 같았다.
월급도, 조직도 훨씬 작은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녀는 승승장구하여 -- 그녀는 부정하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는 -- 멋진 커리어를 이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중요한 일이고, 한국 극소수의 사람만 하는 일이란 걸 떠나서,
그녀 본인이 눈빛을 반짝거리며, 정력적으로 즐겁게 일에 임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
이런 작은 일화에서도, 그녀가 삶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알게 된다.
돈, 안정감, 쉬운 일, 대충 해도 되는 일, 기계적인 일, 편리함- 이런 것들은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녀는 도전하는 사람이다. 돈을 덜 벌더라도, 덜 안정적이더라도, 더 열심히 땀흘려야 하더라도,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몸과 마음을 몰아붙여 끝없이 고민하고, 시간을 들이고,
그녀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울 수 있는 결과물을 멋지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나 배고픈 사람이다.
그녀가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온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와 이런저런 예전의 삶의 조각들에 대해 들을 때마다, 그녀를 더욱 존경하게 된다.
그녀를 알면 알수록, 더욱 사랑하게 된다.
오늘 나는 한동안 마지막이 될 월요전체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이번 주말부터,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살며,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한동안 그녀가 일을 쉬고,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서, 좀 더 공부하고 성장하기로 했다.
그녀가 몇년후 어떤 업계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너무 기대가 된다.
얼마나 그녀를 설레게 하는 일을 하고 있을지, 나의 마음이 설렌다.
'어서 빨리 와' 서, '나를 이끌어주길' 바란다는 그녀.
나를 이끌어주는 건 그녀다.
어떤 일을 해도 설렌다.
결국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