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통해 마주한 인간 존재의 부조리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서평

by 유랑

“그루누이는 세상의 모든 냄새를 알았지만, 자기 냄새는 없었다. 그리고 끝내, 그 공허 속으로 사라졌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2006년 개봉한 동명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의 원작 소설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단순히 독특한 설정의 살인자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향기’라는 감각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 실존적 결핍, 그리고 파국적 고독을 그려낸 무겁고도 철학적인 서사다.


0. 생의 부조리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조리를 겪는다. 생의 의지를 강력히 관철하며 세상에 나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의지가 발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부조리하지만, 갓 태어난 인간은 사유 능력이 없기에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유아기에 인간은, 자신은 물론 부모를 비롯한 타자를 인식함에 따라 스스로의 존재를 점차 규정해 나간다.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는 스스로 고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모의 품에 안긴 인간은 자신이 사랑스러운 아들딸이라는 사실을 자연히 알게 된다. 이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통제되고 속박되며, 부조리한 운명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 이는 불평등의 시작이자, 벗어날 수 없는 생의 굴레가 씌워지는 순간이다.


인간이 유아기를 지나 유년기에 들어서면 본성은 더욱 통제되고 자유는 더 억압받는다. 이때까지도 인간은 여전히 연약한 존재이기에 이를 불평할 시간은 없다. 그저 순응하며 타자가, 사회가 강권하는 삶의 양식을 따르며 그 속에서 쾌락을 찾는 데에 힘쓸 뿐이다.


비로소 이때부터 인간은 사회에 결박되며 그 작동 원리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휩쓸려 살아간다. 사회는 인간을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 편입시키는데, 인간은 이를 마땅한 섭리나 순리로 여기며 순종적으로 받아들인다. 늦은 밤, 고통과 고뇌 속에 몸부림칠 때도 있지만 한시적일 뿐, 날이 밝으면 인간은 자진해서 쳇바퀴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그루누이의 탄생은 부조리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1. 그루누이와 생모, 대물림 되는 부조리


소설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조리와 마주한 존재다. 그의 어머니는 생선을 손질하던 시장 한복판에서 그를 낳자마자 마치 쓰레기처럼 버렸고, 이는 그루누이의 삶에서 처음이자 가장 상징적인 버려짐이었다. 이후 어머니는 여러 아이들을 유기한 사실이 밝혀져 처형당한다. 그루누이의 탄생은 어머니의 죽음을 불러왔고, 그루누이는 태어남으로써 복수 아닌 복수를 완성한 셈이다.


그루누이에게 생모는 사랑을 주지 않은 최초의 타자(他者)였고, 동시에 자신을 이 세상에 던져놓은 가장 부조리한 존재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후 수많은 여성의 삶을 박탈하며 또 다른 부조리의 가해자가 된다. 즉, 그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부조리의 희생자에서 그 재생산자로 변해간다.


살해당한 처녀들은 그루누이가 겪었던 존재의 불확실성과 결핍을 또 다른 방식으로 떠안아야 했다. 그렇게 이 작품은 부조리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물림 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2. 결핍은 광기로, 광기는 강탈로 이어지다


소설에서 그루누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형적인 형태의 감각, ‘절대적인 후각’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강력한 능력은 역설적으로 그가 인간으로서 가장 결핍된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는 후각으로 세상의 모든 냄새를 구분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체취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설정은 단순한 신체적 특이점이 아니라, 그루누이의 실존적 결핍을 상징하는 장치다. 그는 후각이 말해주는 세상의 질서를 누구보다 명확히 인지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순 없었다. 고로, 그가 향기에 집착하게 된 것은 욕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루누이는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처녀들을 살해하며 그들의 체취를 수집했다. 그의 행위는 외형상 ‘살인’이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존재를 강탈하여 자신에게 부여하려는 시도였다. 그를 단순한 괴물이라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는 사랑받지 못한 자가 사랑을 강탈하려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인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에게 없던 것을 가지기 위해 타인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생모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 사랑을 주지 않은 이에게서 태어난 그는, 결국 사랑을 뺏는 자로 전락하며 또 다른 비극을 만든 셈이다.


그루누이의 살인은 단지 향기를 향한 광기가 아니라,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나도 존재한다'라고 외치려 했던 한 인간의 고독한 저항이었다.


3. 확신할 수 없어 생은 무참하다


그루누이는 살인죄로 처형대에 섰지만, 그 시점에서 그는 이미 완벽한 향수를 완성해 낸 상태였다. 향수는 군중의 이성을 무너뜨렸고 사람들은 향기라는 이름의 마법에 넋을 잃었다.


그루누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세상의 혼란이 아닌, 자신이 증오했던 인간들 가운데 서 있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혐오하는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처형받길 원했다. 남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싶었던 그의 갈망은, 형체도 없는, 다만 너무나 완벽했던 자신의 향수로 인해 실패한다.


향기가 광장에 퍼졌을 때, 사람들은 향수의 보호막에 싸인 초라한 남자에게 환호했다. 군중은 냉혈한 살인마, 지독한 진드기 그루누이를 연호했다. 자신이 살해한 딸들의 아버지들조차 그를 용서했다. 향수라는 투명한 망토 속에서 그루누이의 증오는 더욱 커졌다.


향수의 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광장은 일시적으로 도덕과 질서가 소멸된 혼돈의 공간으로 변했다. 모든 구분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서로 애무하며 몸을 뒤섰었다. 그때에도 그루누이를 바라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황홀한 순간마저 그루누이의의 존재는 역시 무취(無臭)했다. 오직 향수만이 향기를 뿜었다. 사실상 그는 고립돼 있던 셈이다.


그는 향수의 힘이 자신의 목표로 데려다 주리라 믿었지만, 곧 깨닫는다. 그것은 겨우 타인을 조작한 결과였으며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사형 집행관이 그를 풀어준 것도, 군중들이 그를 떠받들었던 것도 그들이 모두 향기에 취했기 때문이었을 뿐, 그루누이에게 연민이나 애정을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향수를 잘 만드는 사람이었기에 그랬을 뿐이었다.


그루누이는 여전히 무취했다. 체취뿐 아니라 그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완성한 향수와 함께 자멸을 선택한다.


4. 맺으며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은 무언가를 열망한다. 그 열망은 주로 자유나 인정 같은 욕구와 맞닿아 있다. 어쩌면 그러한 집착 욕구는 공허를 채우기 위한 일종의 자기학대가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물론 그루누이는 무참한 살인마고 향수밖에 모르는 강박증 환자다. 그럼에도 그에게 왠지 모를 측은지심이 드는 건 왜일까. 머나먼 곳까지 도달한 끝에 그가 마주했을 허무함이 왠지 안쓰럽게도 느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년다움과 무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