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퇴근길 버스, 창문에 비친 낯선 얼굴

한 달 전의 나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내가 누군지 몰랐다

by 완작가
ApplicationFrameHost_5fsJddAvPJ.gif 노을 속의 나에게 (To Myself in the Sunset)



창문에 기대앉으니

하루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주황색 노을이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는 시간


퇴근길 버스 창가 자리에

몸을 맡긴 채

가방은 무릎 위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고


이어폰에서는 익숙한 멜로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딘가 지쳐 보였다


(Chorus)

창밖에 흘러가는 노을 속에

오늘의 나를 잠시 맡겨

말 없이 지나간 수많은 순간들

그게 나를 조금은 자라게 했을까


(Bridge)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텅 빈 눈빛은

바깥 풍경만 쫓았다


(Chorus Repeat)

창밖에 흘러가는 노을 속에

오늘의 나를 잠시 맡겨

말 없이 지나간 수많은 순간들

그게 나를 조금은 자라게 했을까


(Outro)

어쩌면 집으로 향하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하루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는지도 몰라...




한 달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첫 월급으로 부모님의 해묵은 내복을 바꿔드린 주말이 지났다. 나는 다시,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버스에 올랐다. 한 달 전,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바로 그 창가 자리였다.


익숙하게 창문에 머리를 기대자, 그날처럼 어둠이 내린 유리 위로 내 얼굴이 떠올랐다. 여전히 피곤에 절어있고, 어딘가 낯선 얼굴. 하지만 한 달 전의 그 얼굴과는 분명히 달랐다. 겁에 질려 있기보다, 무언가를 견뎌낸 사람의 덤덤함이 묻어 있었다.


지난 한 달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화이트보드 앞에서의 망신, 견적서 실수로 인한 절망, 그리고 비상계단에서 마셨던 수십 잔의 믹스커피. 돌아보면 모든 것이 서툴고, 부끄럽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지금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여자친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늦게 끝나? 영화나 한 편 보고 들어갈까?]


‘영화’. 그 두 글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까맣게 잊고 있던,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어떤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득, 지금의 이 낯선 회사에 들어오기 전, 아주 잠시 머물렀던 그곳이 떠올랐다. 컴퓨터와 서류 대신, 고소한 팝콘 냄새와 커다란 스크린이 세상의 전부였던 곳. 초등학교 동창 녀석의 소개로,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던 극장 아르바이트.


그리고 그곳에는, 그녀가 있었다.


티켓을 발권하던 그녀의 맑은 목소리, 어두운 상영관 안에서 스크린 불빛에 희미하게 빛나던 그녀의 옆모습.


내가 용기를 내어 “영화 뭐 좋아하세요?”라고 어설프게 말을 걸었던, 나의 가장 떨렸던 첫 질문. 모든 것이 서툴고 불안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던 그 시절의 기억.


버스 안내 방송이 들려오고, 나는 생각의 강에서 빠져나왔다. 서둘러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니, 지금 퇴근. 당연히 좋지. 극장 앞에서 보자.]


버스에서 내리자, 창문에 비치던 낯선 얼굴의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한 달 전의 나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내가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가장 빛나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 낯선 회사가 아닌, 팝콘 냄새 가득했던 그 극장에서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만든 순간들 1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부 예고>


회사에 입사하기 1년 전, 저는 아주 다른 세상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팝콘 냄새와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했던, 그곳에서 시작될 저의 두 번째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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