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6화. 심야의 고백

by 완작가
2-6. 나란히 잠든 심야의 두 사람.jpeg


EP 6. 심야의 고백


대부분의 관객이 현실로 돌아간 뒤

마지막 심야 상영의 고요한 무게

영사기에서 뿜어 나온 푸른 빛줄기 속에

우리는 섬처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느새 무거워진 눈꺼풀 위로

나란히 고이는 깊은 단잠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어깨 위로

서로의 온기가 조용히 스며들고.


마침내 웅장한 음악이 잠을 깨울 때

검은 화면 위로 하얗게 흐르는 이름들 사이

차마 내뱉지 못한 고백의 문장들이

망막 위를 유영하다가 툭, 떨어졌다.


차가운 가죽 위로 조심스레 내디딘 손끝

비로소 맞닿은 손등의 온도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우리의 진짜 오프닝을 알리고 있었다.




그녀의 퇴원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고, 우리는 그 축하의 자리를 다른 화려한 장소가 아닌 우리의 가장 익숙한 ‘무대’에서 갖기로 했다.


모든 정규 상영 시간이 지나고 찾아온 마지막 심야 상영 시간.


하루의 소란함이 모두 빠져나간 극장은 평소보다 훨씬 깊고 무거운 정막에 잠겨 있었다. 1층의 매표소도, 2층의 검표대도 이제는 마감을 준비하는 나른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이 시간에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이에요. 사람이 정말 없네요."


그녀가 속삭이듯 말하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환자복을 벗고 다시 일상의 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병실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생기 넘쳤고, 그 머리 위에는 내가 선물한 투박한 곰 인형 머리핀이 여전히 소중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관객이라곤 저 멀리 구석에 앉은 한두 명뿐, 수백 개의 좌석은 대부분 텅 빈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광활한 빈자리가 오히려 우리 두 사람을 하나의 섬처럼 묶어주는 기묘한 전율이 일었다.


우리는 상영관의 중앙에 나란히 앉았다.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기둥이 어둠의 한복판을 가르고 스크린에 닿자 영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참 동안 화면을 응시하다가,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밀려오는 피로에 몸을 맡겨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갓 퇴원한 뒤의 노곤함이, 나는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며 긴장 속에 밤을 지새웠던 나날의 여파가 한꺼번에 몰려온 모양이었다.


서로의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깊고도 짧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어두운 상영관은 우리의 지친 몸을 덮어주는 가장 아늑한 담요가 되어주었다.


마침내 영화의 음악이 웅장하게 고조되며 모든 사건이 갈무리될 때쯤, 그 거대한 진동에 놀라 우리는 번쩍 눈을 떴다.


화면은 돌연 검게 변하며 하얀 글자들이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엔딩 크레딧이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몽롱한 의식 속에서, 상영관 안의 정적은 더욱 깊게 느껴졌다. 스크린의 푸른 빛이 사라진 자리에 하얀 글자들의 미미한 광원만이 남았을 때, 나는 굳게 결심한 듯 손가락을 아주 조금씩 옆으로 움직였다.


차가운 가죽 시트의 질감을 조심스럽게 지나 마침내 내 손가락 끝이 그녀의 손등에 아주 살짝 닿았다.


순간, 잠기운이 확 달아날 정도로 강렬한 전율이 일었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접촉에 놀란 듯 어깨를 움찔했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내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깍지를 끼듯 스며들어 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건..."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을 때,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검은 배경 위로 별똥별처럼 흐르는 엔딩 크레딧의 빛이 그녀의 깊고 맑은 눈동자 속에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그 눈동자 안에는 나보다 더 큰 떨림이 머물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서 들리던 숨소리였네요. 좋아해요, 진심으로."


고백은 짧았고, 문장은 더없이 투박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의 명대사나 화려한 시구보다도 진실한 무게를 담아 그녀에게 전달되었음을, 나는 맞잡은 손의 압력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더 꽉 맞잡아 주었다.


맞잡은 두 손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온기는 차가웠던 상영관의 공기를 순식간에 봄의 한복판으로 옮겨놓았다.


관객도 거의 없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없었지만, 그 밤 마지막 심야 상영관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이라는 영화의 가장 눈부신 클라이맥스를 함께 완성하고 있었다.


필름 밖의 진짜 사랑이, 모두가 끝이라고 믿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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