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 자리는 창가 쪽 가장 끝자리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나의 첫 역사가 시작되었다

by 완작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나의 첫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들, 가가 쫄지 말고! 인사는 딱 부러지게 하고! 알긋나?”


아주 오래전, 나의 첫 출근 날 아침. 현관 앞에서 어머니는 어젯밤 몇 번이나 다림질했던 내 셔츠의 깃을 매만지며 사투리로 연신 당부의 말을 건네셨다.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심장은 이미 제멋대로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소개로 들어간 회사라, 나 하나 잘 못하면 교수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어린 어깨를 짓눌렀다.


만원 버스의 덜컹거림에 몸을 맡긴 채, 나는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면접 때 외웠던 자기소개를 되뇌었다.


‘정신 차리자. 오늘 진짜 잘해야 한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큰맘 먹고 산, 아직은 길들지 않아 발뒤꿈치가 아파오는 구두와 어딘가 불편한 면바지. 잔뜩 굳어있는 표정은 영락없는 ‘오늘 첫 출근한 신입’의 얼굴이었다.


‘가서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점심은 누구랑 먹나? 혹시 나만 동떨어지면 어쩌지?’


수만 가지 걱정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마음속으로 전쟁을 치르다 보니, 어느새 낯선 회사 건물 앞이었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묵직한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도시의 소음 대신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희미한 커피 향이 나를 감쌌다.

잠깐의 어리둥절함도 잠시, 나는 곧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바다 한가운데에 던져졌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만 홀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미아(迷兒)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어이, 신입. 거기 서가 뭐하노? 일로 온나.”


유쾌한 미소를 띤 한 선배였다. 그를 따라 어색하게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복도를 지나자, 창가 쪽 가장 끝자리에 손때 묻은 낡은 책상 하나가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디어’라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서랍 속에는 누가 쓰다 남긴 것인지 모를 굳은 볼펜과 먼지 쌓인 서류 클립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나는 물티슈를 뽑아 책상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했다. 오래 묵은 먼지를 걷어내자, 짙은 나뭇결이 속살처럼 드러났다. 누군가의 흔적을 지우고,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첫 번째 의식이었다. 지저분한 것들을 닦아내고,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며, 나는 조금씩 나의 공간을, 그리고 나의 마음을 정돈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하루가 흘렀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깨끗하게 닦아 놓은 나의 낡은 책상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을 거라고, 아주 잠시나마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그 순간, 책상 위 전화기가 지독한 벨소리를 울리며 내일의 나를 호출하기 전까지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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