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뛰퇴남의 달리기 인문학

2. AI시대 직장인 생존 전략

by wangane

2025. 12. 10


내가 다니는 회사, 좀 거칠다.

조직 개편을 꼭 윤석열이 비상계엄이라도 선포하듯 기습적으로 한다.

내가 모시던 CTO는 한직으로 물러났고, 나를 인정해 주던 COO는 옷을 벗었다.

두 분 다 인사 발령이 나기 직전까지 본인들의 운명을 몰랐던 모양이다.


이 회사에 들어올 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지.

"이곳은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싸움이 치열한 곳이야."

이번 인사를 보니 확실히 박힌 돌의 완승이다.

문득 드라마 <김부장>이 생각났다. 날벼락같은 발령에 그들의 심장은 얼마나 요동쳤을까.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게 연예인 걱정이라던데 고위직 임원도 마찬가지다.

고위직 임원 걱정이지만, 인간적인 짠함까지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남의 페이스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 앞에도 거대한 업힐(Uphill)이 나타났으니까.

2년 후배가 팀장인 부서에 팀원으로 배치됐다.

심지어 나랑 성씨까지 같은 '멍부(?)' 스타일의 후배다.


여기에 임금피크제라는 강제 다이어트까지 더해졌다.

물가는 전력 질주하는데 내 월급은 10%나 '근손실'이 났다.

지갑의 VO2 Max가 뚝 떨어진 기분이다. 확실히 힘이 빠지는 구간이다.


별수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지만 당장 아이 교육비며 생활비라는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의 회사 생활 잘하는 노하우를 알려드리고 싶다.


1. 스트레스는 디폴트 값이다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를 바라는 건, 여름날 마라톤을 뛰며 땀이 안 나길 바라는 것과 같다.

중요한 건 열기를 식힐 나만의 냉각수다.

누군가에겐 맛있는 점심일 테고, 누군가에겐 상사 뒷담화라는 간식 타임이겠지.

나의 경우엔 매일 달려서 퇴근하는 것이다.

운동하면서 월급 받는다고 생각하면, 상사의 지적질은 페이스 조절을 위한 '7분대 슬로우 조깅'의 소음 정도로 들릴 뿐이다.


2. 직장은 비전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비전은 본인이 만드는 것이다.

직장은 기본적으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곳이지, 동호회나 학교가 아니다.

회사가 평생 내 무릎 관절을 책임져주지 않으니, 나만의 '개인 레이스'를 준비해야 한다.

퇴직이라는 피니시 라인 이후의 코스를 미리 설계하는 자만이 진짜 자유로운 직장인 러너가 된다.


3. 일보다 힘든 건 사람이다

코스가 험한 건 참아도, 옆 러너가 팔꿈치로 치는 건 참기 힘들다.

하지만 세상에 이상하지 않은 러너는 없다.

결국 중요한 건 타협과 포커페이스라는 '슬립스트림(Slipstream)' 기술이다.

일 잘하면서 사내 정치도 매끄럽게 하는 건 비겁한 게 아니라, 영리한 레이스 운영이다. 이번에 상무로 승진한 학교 후배가 아주 훌륭한 전략적 페이서였던 것처럼 말이다.


4. 근태는 레이스의 기초 체력이다

요즘 시대에 근태를 강조하면 꼰대 취급받기 딱 좋지만, 이건 실력 이전에 태도의 문제다.

출발선에 제시간에 서지 않는 러너가 좋은 기록을 낼 리 없지 않은가.

근태가 엉망인 후배에게 몇 번 조언을 건넸지만 역시나 나는 꼰대 취급을 받았다.

뭐, 상관없다. 원래 진리는 가끔 숨이 차게 들리는 법이니까.


회사가 내 가슴팍에 억지로 핀을 꽂아 달아 준 그 번호표가 내 실력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냥 세탁기 한 번 잘못 돌리면 너덜너덜해질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회사라는 좁아터진 트랙 밖에서도 충분히 아스팔트를 씹어 먹으며 질주할 수 있는 진짜 러너들이다. 소속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서 소중한 배기량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나만의 비전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오늘도 그저 묵묵히 왼발 앞에 오른발을 내디딜 뿐이다.

그래서, 너는 오늘 누구를 위해 달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