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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Aug 09. 2020

잘 통하는 220V

  오래된 것을 바꾸지 못하는 점에 대해 이전에 쓴 적이 있다.(https://brunch.co.kr/@wangbeeyaa/80)

 휴대폰은 망가질 때까지 쓰고, 바꾼 핸드폰은 판 적이 없다.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초기화시키기도 아쉬워 하나하나 모은 것이 꽤 된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차는 신차로 바꿀 때 보이지 않는 곳에 주차 해 놓고 나름의 작별식을 치렀다. 한 번 정이 담뿍 들어버린 것을 쉽게 놓지 않는데 인연 또한 그렇다. 


  나이가 들 수록 새로 사람을 만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같이 있는 게 어색해지지 않으려 무슨 말이든 끌어오고 푼수 같은 행동을 하고 있거나 남 이야기를 하며 친밀감을 쌓았다. 그런 인연들과 두세 시간 같이 있다 보면 할 말이 없다. 남의 말을 하며 친숙감을 나눴으니 내 이야기라고 어디서 안 하리란 법 없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신경 써야 하니 시간을 같이 보냄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한참 만나고 오면 내가 참 별로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점점 관계를 멀리하게 된다. 


  시골로 이사 온 지 몇 년이 되었어도 편한 친구 하나 없이 심심하던 내게 반가운 소식은 옛 지인들의 방문 요청이다. 이번엔 아경이가 온단다. 아경이 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딱히 서로에게 다정한 말을 하거나 세상 둘도 없는 그런 사이는 아니지만 만나면 그저 편하다. 말을 하지 않고 종일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어떨 때는 하는 행동이 너무 병맛 같아서 거르지 않은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어쩜 그리 등신 같냐며 면박을 주고 키득댄다. 그러니까  보듬을 필요 없이 막 다루는 관계가 나한테는 잘 맞는다. 잘 맞는다는 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인연들이 아닐까? 꽤 힘든 일이 있어도 만나서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푸하학 웃어버리면 나라는 인간이 충전되는 기분?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를 느끼게 하는 것은 오래된 지인과의 편한 만남이다. 

  다음 주부터 일주일 휴가를 받았는데 우리 집으로 놀러 오겠다는 문자다. 배달 음식을 시키고 밀린 일상사를 주고받아야지. 아껴둔 술을 꺼내 새벽 내 홀짝이며 야금야금 옛 추억을 꺼내 먹어야지.

   10대에 만나 30대 끝자락에서 서로 정수리 흰머리를 응원하는 우리. 옛 친구와의 시간은 '나'를 '나'답게 충전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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