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의 맛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나에 관한 공부 즉, ‘나 공부’ 중이다. 배워가는 사람이라는 뜻에는 배움을 좋아하고 지식을 확장하는 영역을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나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란 뜻으로 글을 쓴다.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겪으며 갑자기 맞닥뜨린 부모의 삶에서 나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 인성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자책하고 버거워하던 중, 글쓰기를 만났다. 나에 대해 분석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것을 좋아했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를 글로 풀었다. 띄어쓰기도 문단 구분도 어설픈 나였지만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모니터 위에 풀었다.
글을 쓰며 문학도들과 마주할 때마다 학문으로 배운 그들의 기본기와 날것의 내 글은 차이가 확연했다. 그래도 나는 내 '날 글'이 좋았다. 나만 느끼는 감정이 있고 가독성이 좋아 쓱쓱 읽힌다는 평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자를 만날 거라면 맞춤법이라도 제대로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십 번 읽고 수정하며 원고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퇴고하느라 잠을 못 자 퀭해진 나를 보며 아버지는 말했다.
"너는 아마추어이니 프로 흉내 내려고 하지 말아라. 아마추어의 맛도 있는 것이다. 성장해서 돌이켜보았을 때 미숙한 면 또한 추억이 될 거다.”
아버지의 말씀 덕에 원고를 손에서 털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독립출판을 했다. 지금은 몇 군데 동네 책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소하게 월 정산으로 돈도 입금이 된다. 책을 써서 나의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곤 기대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정말 고요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고 그저 시골에 살며 육아하는 글 쓰는 거 좋아하는 아줌마로 살고 있다.
글을 쓰며 한 가지 얻은 것은 나를 탓하던 자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민낯을 제대로 마주해보니 내가 인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외부로 향하던 원망을 멈출 수도 있게 되었다. 실패를 기점으로 계속 해내며 얻은 건, 나를 인정하는 방법이었다.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작가'라는 호칭이 어울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