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공유 Apr 17. 2020

애쓰지 않는 시간

이너 피스를 위해 각자의 휴식처가 필요하다.

아이와 신랑이 잠든 걸 확인하고 침대를 빠져나왔다. 에탄올난로 이너피스 불멍

피곤에 따끔거리던 눈이 번쩍 뜨인다. 불멍

온전히 한 시간이라도 혼자 있고 싶다.  이너피스




아이는 여전히 내게 귀한 존재이며 삼십여 년을 살며 경험치 못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친구나 애인이 주는 기쁨이나, 술과 음악에 취해 얻는 쾌락과는 확연히 다른, 전혀 느껴보지 못한 '충만한 쾌락'을 안겨주는 유일한 존재.


그럼에도 하루에 백번 가량(세보진 않았지만 체감상 백번이 넘는 듯하다.) 엄마를 호출하고 찰싹찰싹 달라붙어서 "이거 해. 저거 해줘" "가지고 와"등 시중 아닌 시중을 들다 보면 고요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해진다.

 지인은 출퇴근하는 차 안이 유일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라 했다.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올라가지 않은 채 머문 적도 있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두 아이가 모두 어린이집에 갔던 날, 혼자 노래 들으며 청소하는 시간마저 행복하다 했다. 그녀들 모두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아이와 잠시 떨어져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은 엄마에서 벗어나 '나'로 충전시켜 준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번 신랑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장 보고 올게""주유하고 올게" 라며 집을 빠져나온다. 차를 타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혼자 있고 싶어서이다. 비록 동네 몇 바퀴지만 그렇게라도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고 돌아오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운전을 한다는 건 기동성 외에도 집이 아닌 움직이는 휴식처가 생긴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각자의 이유로 자신만의 휴식 방법이 필요하다. 일상 안에서 급속 충전을 할 수 있는 각자의 쉼터가.




내게는 야식과 함께하는 시청각 미디어 시간과 불멍 하는 시간이 그랬다.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신랑과 아이가 잠들고 난 밤 열 한시부터이다. 주황 불빛아래서 '나 혼자 산다'를 찾아보며 리모컨을 만진다. 명란젓 얹은 볶음짬뽕에 캔 맥주 하나면 금요일 밤은 충분하다.

야밤에 먹는 라면과 맥주에 좋아하는 시청각 미디어는 순간의 행복도를 올려준다. 내가 나를 위해 차려준 술상이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혼자만의 시간의 장점은 애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애쓰면서 아이와 놀거나, 간식을 나르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과 만나며 '텐션 업'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잠시 내 마음에 귀 기울이며 혹은 그것조차 버거울 때는 머엉하게 있을 거리가 필요했다. 쉰다고 해서 휴대폰을 보거나 노래를 듣는 것 조차 내 몸 어딘가는 쉬지 않고 정보를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니.




  

늘 이맘때쯤이면 잔디밭에 캠핑 의자를 펼치고 음악을 만끽하며 책을 읽었다. 등과 머리로는 햇살이 쏟아지고, 귀로는 노래가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이 행복했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노래와 함께 보냈다. 싸이월드를 할 때도 도토리를 사들여 노래를 쌓았고, 카카오톡의 뮤직에도 백 곡 넘는 노래가 저장되어있다. 천 원으로 귀와 감성을 적실 소장용 음악을 산다는 건 전혀 아깝지 않다.

운전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점도 심장과 핸들이 울릴 만큼 노래를 틀어도 방음이 잘 된다는 것이었다. 블루투스가 안되던 내 예전 차에서는 시디라도 구워 들으며 출퇴근을 했고, 시골로 이사 오면서 제일 먼저 들였던 가전도 진공 스피커였다. 요즘은 아침마다 '클로버'를 시켜 노래를 재생시킨 채 하루를 연다. 그러니까 노래는 내 일생에서 이십 년 가깝게 끊겨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에서 아이와 비누방울을 불고 꽃을 보며 놀던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정원 가득 쿵쿵대는 노랫소리가 들렸어야 했지만 아이가 시끄럽다고 해 노래를 껐다. 잠시 쉬려고 의자에 앉았는데 한적한 시골의 소음이 들렸다. 그제야 내 귀가 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간 쉬려고 노래를 들었지만 노래를 듣는 순간에도 내 귀는 열일 중이었던 것. 흥얼대거나 노래를 주워 담지 않고 오롯이 봄의 소음을 즐겼다. 간간히 들리는 새들의' 째째'거림과 바람이 부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나무의 '사각'대는 소리, 차가 지나가며 돌을 밟는 '파삭' 소리가 들렸다. 아이스바를 입에 물고 캠핑 의자에 늘어져 노래 없이 주변을 '일상 소음'으로 채웠다. 익숙하지만 생소한 소리들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 시켜 준다.


 노래를 듣는다는  분명 기분이 나아지려고 애쓰는 시간 것이다. 울적해서 혹은 기분이 좋아서 습관적으로 노래를 틀었다. 노래가 주는 힐링의 순간도 있지만  마저도 하지 않고 고요함으로 채울  충전되는 깊이 있는 시간도 분명 있음을 경험했다. 가끔은 노래마저 내려놓고 현재가 주는 소음을 인지 하는 순간이 나에게 필요하다. 어떤 것에도 애쓰지 않는 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는 불멍만한 것도 없지





https://brunch.co.kr/@wangbeeyaa/128


작가의 이전글 보미야, 봄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