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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Nov 08. 2019

취미란을 채우는 것

  이력서 취미란을 채운적이 없다. 면접을 보러 가서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하나를 짚을 수 없을 만큼 다양했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배우는게 취미라고 해야 할까? 플로리스트랑 심폐소생술 과정을 수료했고, 승무원 학원에서 서비스 교육 과정도 수료했다. 돌하우스를 배우고 싶어 기웃 대봤는데 손톱만 한 소품을 만들려고 꼼짝 않고 있다 보면, 엉덩이가 근질거리는 통에 하다 말았다. 웨이크 보드, 스노보드, 수영, 요가, 줌바댄스 모두 발만 담그고 금새 그만 두었다.  


   폴댄스를 배울 때, 비서라는 직무 안에서 이목을 신경 쓰느라 갑갑했던 회사를 벗어나, 거울 속 긴 폴을 잡고 있으면 일탈을 하는 기분이 들어 짜릿했다. 


  강사가 말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섹시하다 생각하세요!!” 그 말을 듣고 다시 눈에 힘을 준다. 고개를 한번 ‘툭’ 쳐서 올리고 어깨와 가슴을 편다. 한 손으로 폴을 잡고 까치발로 빙글빙글 돈다. 거울에 비치는 내가 다르게 느껴진다. 한낮의 나는 지워버리고 퇴근 후 다른 나를 보는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오랜 취미는 요리와 독서다. 초등학생 때 케첩, 설탕, 마요네즈를 섞어 만든 파스타가 첫 요리였다. 밀가루를 반죽해 떡을 만들어 떡볶이를 했다. 맛있었다. 예전에는 가끔 하는 요리가 그저 재미있었는데 내 살림이 되다 보니 치워야 하는 수고스러운 생각이 앞서게 되면서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다. 어째서 주방은 물기 없이 정돈되어 있을때가 가장 보기 좋은 걸까?


  변하지 않는 취미는 단연 독서다. 다독을 뿌듯해하던 때, 책장을 넓혀갈수록 내 소양이 쌓이는구나 싶었다. 같은 책을 두 번 사버린 날, 나는 독서 습관을 바꾸었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속독하는데 책이 좋다 생각 들면 구매한다. 재독 할 때는 밑줄을 그으며 읽는다. 그렇게 해 두면 나중에 펼쳤을 때 그 부분만 읽더라도 대략적인 내용이 기억난다. 책은 씹어 먹어야 겨우 남는다는 걸 알았고, 블로그에 드문드문 서평을 적는다. 올해 백권 읽기를 목표로 삼았는데, 독서록에 이제 절반이 채워졌다.  

  과거 내 책 읽기가 휘발성을 띄었다면, 지금은 밀랍 잔뜩 들어간 향초다. 태울수록 집안 곳곳에 베어 든다. 스쳐간 책에서 좋아하는 구절들을 꼭꼭 씹는다. 몇 가지는 내게 베어 들겠지. 


 독서를 하면 돌고 돌던 생각이 숨어있던 나를 발견한다. 생각의 꼬리가 성찰의 머리와 만나 지혜를 키운다. 독서는 한 몸통인 사색과 성찰이 지혜를 깊게 파 그릇을 넓히는 과정이 아닐까. 나의 독서력과 지혜는 어디쯤 왔을까. 질문이 늘어간다는 것이 지혜를 배우는 첫 술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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