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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Aug 25. 2019

호의와 저의

남긴 건 음식이었는데, 넘겨받은 건 음쓰라니.

"옛다."

시누이가 비쩍 내민 손을 보니 이유식을 담거나 소스를 담는 작은 유리 밀폐용기였다. 내용물은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만든 거였으니까. 멸치볶음.

 뒤이어 이어진 말에 얼굴이 화끈 해졌다.

"너희 집 꺼."



양으로 치면 한 젓가락인데  먹기가 거북스러웠나? 먹기 싫으면 버리고선 물에 부셔서라도 주는 게 보통아닌가? 짧은 몇 초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언제 적 것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내가 규니와 외출할 때 반찬을 싸들고 다닐 시기라면 적어도 6개월 이상은 되었다는 말이다.  굳이 개월 수를 따져내지 않더라도 밀폐용기 유리면에 하얗게 끼어있는 곰팡이를 보면 오래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시기상으로는 6개월 전 시누네 집에 갈 때, 규니가 먹을 반찬을 챙겨 갔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멸치는 마르다 못해 비틀어서 더 야윈 모습으로 뾰족이 솟아 있었다. 뽀얗게 흰 이불을 덮은 채로.

'웬만해서는 멸치볶음에 곰팡이 안 끼는데 진짜 진귀한 장면을 보네.'




  중학생이 된 조카가 바라보고 있는데  표정관리가 안된다. 우리 집 식기라 돌려주는 것이라는 시누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릇만을 돌려줄 것이라면 씻어 돌려주었을때 호의라고 받아 들일수 있었겠지, 곰팡이 낀 반찬통을 내미는 건 저의가 담긴 거라고 받아들이는 내가 꼬인 건 아닐 테지.


  아마 내가 물건을 흘리고 간 것을 꼬집고 싶어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바리바리 아기 짐을 싸들고 갔다가 하루는 기저귀를, 하루는 아기 장난감을 놓고 올 때가 있었다. 몇주가 흘러 다시 찾아가면, 시누는 풀어놓고 간 고무줄 한 개까지도 가지고 있다가 재차 돌려주는 사람이었다.

물건을 돌려주며, 말 한마디를 얹는 통에 돌려받아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정신머리가 없네~ 자, 여기 니 머리끈."

세 살 된 규니에게 시누가 고무줄 두 개를 쥐어주며 말을 잇는다.

“고무줄 흘리고 가면 안돼요. 머리 묶어야지요.”

양갈래 머리를 땋은 규니가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엄마 나 머리 묶어야 돼?”

“아냐, 머리 묶어서 안 묶어도 돼.”

고무줄을 받아서는 가방으로 툭 던졌다.

'니 머리끈.'이라는 말투에서 보이진 않지만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칠칠치 못하게 엄마가 이런 걸 흘리고 다니냐? '를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생각을 재차 곱씹다가 가방에 들어간 반찬통을 다시 꺼내어 보다가 물었다.

"언니, 이거 규니 이유식할때 두고 간거 아니에요?"

"몰라, 너는 뚜껑을 잘 닫는다. 우리는 아무리 닫아도 안되더라고. 이뚜껑이 아닌가? 하고 우리끼리 이야기 했었어."

굳이 대답할 말을 찾지 않았다. 공기가 어색했다. 나는 황급히 짐을 챙겨 시누네서 빠져나왔다.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피곤해서 일찍 나왔어. 나 그냥 집으로 갈게.” 하자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묻는데 별 대답을 하지 않고는 집에서 마주했다. 저녁을 먹고 멸치볶음 통을 가방에서 꺼내며 말했다.

“오늘 누나가 뭐 줬는 줄 알아?”

“뭘 줬는데?” 궁금함에 눈을 반짝이는 신랑에게 밀폐용기를 내밀며 보여주었다. 궁금해 웃음을 머금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낮에 있던 상황을 간략하게 말해주고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미안, 누나가 못 배워서 그래.”

 신랑은 늘 저런 식이다. "미안해 우리 집이 이상해서 그래. 네가 이해해.  헐뜯지 말고 좀 참아줄래?’라는 말과 다름없어 보인다.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내가 씻을게 씽크에 올려둬."라는 신랑에게 눈빛을 쏘아두고는 뒤돌아섰다.




침대에 누워 곰곰히 오늘일을 곱씹었다.

언짢다. 곱씹다 보니 도무지 목 안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벌컥 물이라도 마시자하곤 주방에 나와 보니 아직 씻지 않은 멸치통이 보인다. 물을 부수어 내고 거품을 바글대어 닦아냈다. 뽀드득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 해졌다. 개수대에 살포시 엎어 놓았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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