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 사업장으로 집 한편에 작은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나는 7년 전부터 아이들 키우며 작은 아뜰리에를 운영하고 있다. 결혼 전 의상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닉네임으로 얻은 왕드레킴이 내 브랜드의 이름이 되었고 소소하게 꾸려가는 핸드메이드 가방 사장님인 동시에 디자이너이고 재봉사이고 모델이고 촬영기사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난 또 다른 내 공간으로 출근한다. 제작부터 제품 촬영, 판매는 물론 CS까지 1인 다역을 해내야 하므로 하루 24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특히, 작업하는 가방의 특성상 똑같은 가방은 1~2점뿐이라 새로운 가방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제품 사진 촬영을 하고 업로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온라인으로만 운영하고 있는 쇼핑몰은 사진이 생명 아닌가? 아무리 바쁘고 귀찮더라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해마다 가족 여행을 떠날 때면 신상 가방을 만들고 해외 로케 준비하는 잡지사 코디처럼 그에 어울리는 의상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사실 여행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여행의 종류와 목적지 날씨와 분위기에 맞는 신상품을 제작한다고 해야 옳다. 아이들 키우면서 소소하게 내 사업을 하는 것이니 따로 촬영 스케줄을 잡아 떠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루 전날 캐리어를 꾸리고 나서 가방을 만들기 시작해 밤을 새운 적도 많다. 잠은 비행기에서 자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가족들 옷과 준비물 챙기고 한동안 비울 집을 단속하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고객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난 정말 여행 출발 일주일 정도는 원더우먼이 되는 기분이다.
내가 주로 취급하는 Antique(앤틱) 햄프원단(grain sack-곡물자루)과 트왈드주이(toile de jouy) 원단들, 그리고 빈티지 가죽 핸들까지 모두 다양한 유럽 국가들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유럽 여행은 고국을 떠나 한국으로 입양되었던 각각의 재료들이 가방으로 다시 태어나 고국을 방문한다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여행 중 틈틈이 찍는 사진 작업 이외에도 유럽의 벼룩시장을 찾아가고 빈티지 숍을 구경하는 것도 디자이너로서는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가족 여행을 하다 보면 신랑은 아이들 위주로 일정과 동선을 짜기 때문에 아쉬울 때가 너무 많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신랑 없이 시간에 구해도 받지 않으므로 마음이 한결 편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도 출장길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의 문화를 내 느낌대로 해석할 좋은 기회이고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을 때도 왕왕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의 패션 거리를 걸으며 로컬인들의 패션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유럽 빈티지 재료들로 작품을 만드는 나에겐 더없이 소중한 출장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