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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Nov 29. 2024

18. 로마와 동방을 연결하는 항구도시

브린디시 기항지 관광


브린디시가 어디야?

이탈리아의 지도를 열어봤다. 길쭉한 구두 모양중 뒷 굽 쪽에 위치해 있는 작은 항구도시.

크루즈가 아니었다면 갈 기회도 찾아볼 기회도 없었을 작은 항구도시를 기항지 관광으로 가보게 되었다.

하지만 작은 항구도시는 우리 가족이 여행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지도를 뒤적거리다가 브린디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알베로벨로'에 더 마음이 갔다. 석회석의 원뿔 구조가 너무 귀여운 동화 속에 나올법한 이 도시는 1996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고 해서 더욱 가보고 싶었다. 크루즈에서 진행하는 기항지 관광이 있어 알아보니 1인 90유로(약 13만 원 )라 우리 가족 4인이면 50만 원 이상의 지출이 생긴다. 아침에만 도착하는 기항지면 렌터를 하거나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해 질 녘에 도착한다는 것. 4인 50만 원을 쓰고 가서 야경만 보고 오기엔 너무 큰 지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우린 알베로벨로를 사진으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내린 브린디시.

크루즈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니 항구에서 가까운 올드타운 앞에 내려준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도시엔 하나 둘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사림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 본다. 해안가엔 크루즈에서 내린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노점상들이 쭈욱 깔려있지만 나의 구매욕을 끌지는 못했다. 여기도 스플릿(split)의 해안가처럼 크루즈 관광객들이 관광 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항구를 따라 산책로로 이어지는 넓은 계단 위에 위치해 있는 높은기둥석을 발견했다. 

이 기둥은 어쩌다 이 높은 곳에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세워진 걸까? 예전에 이곳에 성이 있었던 것일까? 미리 공부를 좀 하고 왔어야 하는데 아무 지식 없이 오니 기둥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 

"엄마, 나 화장실~"

배에서 내리기 전에 꼭 화장실을 한 번씩 들리라고 말했건만,, 화장실은 또 어디에 있을까? 일단 기둥 뒤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카페라도 있겠지. 로마시대로 이어지는 높고 오래된 건물들과 울퉁불퉁하면서도 맨질맨질 해진 돌바닥을 걸어 들어갔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문이 닫혀있어 지환이의 표정은 더 암울해지던 찰나에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에 불이 켜있다. 

"지환아! 화장실이 급할 땐 어딜 찾으라고 했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낯선 곳에 가서 용변이 급해지고 화장실이 보이지 않을 땐 종교시설을 찾아보라고 항상 이야기해주곤 했다. 한국에서는 병원이나 호텔 또는 공공기관에 들어가면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해외에 나가서는 유료인 화장실도 많고 화장실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종교시설에서는 화장실도 너른 마음으로 오픈을 해주기 때문에 아이들한테도 비상시 상황을 왕왕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지환이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더니 다시 나온다.  

"엄마 여기 박물관이야! 구경하고 가자!" 그제야 구글맵으로 찾아본 이곳은 브린디시 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Francesco Ribezzo)이었다. 

겉에서 보기엔 작아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지하부터 3층까지 이어져 있는 수많은 유물들이 가득한 박물관이었다. 


'오히려 좋아'


브린디시(Brindisi)가 이탈리아반도에서 위치와 아드리아해의 자연항이라는 입지조건 때문에 역사적으로 상업과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중심지가 위로 옮겨지면서 현재는 바리(Bari)가 더 큰 도시가 되었지만 고대 로마시대 때엔 로마 황제들이 위치적으로 가까이 있는 그리스와 중동지역을 다니는 주요 교역항이었기 때문에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었을 테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계단의 높은기둥도 알고 보니 이탈리아 최초의 포장도로 아피아 가도(로마부터 남쪽의 항구도시 브린디시까지 이어져 있어 총연장 560km에 달하는 길)의 종단 기둥이었다. 

아빠가 이마를 탁 친다. 조각조각 흩어져있던 역사의 지식들이 퍼즐 맞추듯 하나씩 연결되니 다시 우리의 세계사 여행의 2부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그냥 보기만 하면 재미도 없고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일단 역사를 알고 나면 특별한 매력을 갖게 되는 것이 세계 역사여행이다. 생각지도 못한 화장실 사건으로 우리는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로마시대에 대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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