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 (ゴジラ, 1954)
불현듯 발생한 재난에 의해서 사람들의 일상이 파괴되고, 영웅적 인물들의 힘으로 이를 극복해낸다는 점에서 영화 <고지라 (1954)>는 재난 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고지라>가 일반의 재난영화와 이격 되는 지점은, 그 재난이 자연적인 것이 아닌 ‘고지라’라는 가상의 괴수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점과 이 영화가 1954년의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가 개봉한 ‘1954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수소폭탄은 ‘캐슬 브라보’라는 작전명 아래에서 실험되었으며, 1954년 3월 1일 비키니 환초에서 이루어졌다. 캐슬 브라보는 ‘수소폭탄 실험’이라는 사실 외에도 주변의 민간인들이 방사능에 피폭된 실험으로도 기억되고 있다. 이 피폭자들 중에서는 인근에서 참치잡이를 하던 일본의 선원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결국 선원들은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이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충격적인 피폭의 참상을 경험한 일본인들에게 또 한 번의 피폭 피해는 공포적 체험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캐슬 브라보와 고지라가 맞닿게 된다.
영화 속 고지라의 설정은 쥐라기 시대의 생물이며, 진화학적으로 해상 생물에서 육상 생물로 진화하는 단계 그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고지라가 깨어난 것은 바다에서 진행한 수소폭탄의 실험 때문이며, 고지라의 발자국 흔적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가이거 계수기의 소리가 이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핵무기와 고지라는 원인(수폭실험)-결과(고지라)의 인과관계에 놓여있다. 이러한 인과관계는 1945년의 일본에서 원인(히로시마-나가사키)-결과(핵 공포)로 이미 이루어진 바가 있다. 따라서, 고지라와 일본인들이 경험한 핵 공포는 겹쳐질 수 있다. 고지라와 당시 일본이 경험한 공포가 연결되는 지점은 영화 속에서 야마네 박사가 “고지라는 세상의 그 어떤 과학자도 본적이 없는, 일본에만 나타난 귀중한 연구대상이야” 라고 말하면서 드러난다.
고지라의 능력은 세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육중한 발로 짓누르는 물리적 폭력-입에서 나오는 증기로 상대를 녹여버리는 화학적 폭력-지나가는 곳을 방사능으로 뒤덮어버리는 방사능이 그것이다. 이 모든 형태의 폭력은 명확하게 핵폭탄을 가리키고 있다. 고지라의 파괴적 능력이 처음 등장한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이미지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선원들은 갑자기 바다에서 발생한 밝은 빛과 함께 쓰러진다. 이는 캐슬 브라보의 수폭 실험에서 피폭 당한 일본인 어부들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만화 <맨발의 겐>에서도 보여준) 밝은 빛과 함께 모든 것을 증발시켜버리는 원자폭탄의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즉, ‘고지라’라는 괴수는 핵폭탄 자체를 가리키고 있으면서도 그로부터 기인한 일본의 공포적 체험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복합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동일하게 핵무기와 그에 대한 공포를 모티프로 삼고 있는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1951)>에서의 ‘고트’와 차별된다. 말하자면, ‘고트’는 핵무기와 일대일로 대응되는 일차원적인 표상이라면, ‘고지라’는 핵무기와 일본인들의 복합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다차원적인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