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철강 중심의 진보

현대차 고급차 라인업 발진...도요타만 성공한 길 갈 수 있을까

by 이완 기자

현대자동차가 드디어 럭셔리 브랜드를 내놨습니다. 이름은 '제네시스'. 원래 있었던 차명이었는데, 2세대 제네시스가 출시 뒤 좋은 성적을 거두자 이를 브랜드로 확장시키기로 한 겁니다. 이를테면 도요타의 '렉서스', 닛산의 '인피니티' 같은 브랜드를 내놓은 거죠.



현대차가 고급 브랜드를 새로 내놓은 것은 거기에 주목할만한 시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의 통계 결과를 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고급차 시장의 연평균 판매 증가율은 10.5%였습니다. 현대차나 폭스바겐 같은 대중차 시장 증가율 6.0%를 훌쩍 넘기죠.


이미 브라질 중국 등 브릭스 국가에 공장까지 만들어 진출한 현대차로서는 고급차 시장은 가야할 미지의 시장이었습니다. 더구나 고급차 라인업을 가지게 되면 대중차에 적용하기 힘든 고급 안전 사양 등을 미리 달아보고, 이후에 대중차에 적용할때도 개발비를 아끼는 효과까지 얻게 되죠.


하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가기 쉬운 시장은 있을까요. 이미 대중차 브랜드로 이름을 날린 혼다나 닛산도 고급차 브랜드를 내놓고 고전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접을수도 잡을수도 없는 상황이죠.


현대차는 이 실패를 따라가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2004년 1세대 제네시스 차량을 개발할 때부터 2008년에 브랜드 출시를 검토했다고 하구요. 2006년에는 국내와 북미에서 고급차 관련 테스크포스팀을 운영하고, 외부 전문 컨설팅 업체를 통해 시장조사 및 수익성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어 터진 2008 글로벌 금융위기는 고급차 시장을 위축시켰고, 브랜드 런칭은 미뤄졌죠. 무려 7년간...


이제 자신감이 생겼나 봅니다. 짧은 머리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제네시스 발표현장에서 "과거에도 많은 선배 분이나 현대차 식구들이 잘해왔고 산업화시대에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 때문에 그런 정신이 우리 안에 흐르고 있다"면서 "제네시스는 오랜기간 준비를 해왔고 도전을 해야 변화할 수 있고, 바뀌어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고 제네시스 출시의 의미를 두었습니다.


자신감은 정의선 부회장의 이야기처럼 현대차가 뒤늦게 출발하고도 유럽과 일본의 숱한 브랜드를 제치고 글로벌 5위 자동차 제조업체로 올라온 것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에 BMW 고성능 버전 M을 개발했던 알버트 비어만에 이어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까지 현대차에 합류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들도 현대차가 실력을 발휘해볼만한 자동차 업체라는 생각을 했겠지요. 이들이 기아 디자인을 성공시킨 피터 슈라이어 사장만큼 어떤 역할을 해줄지 기대되기도 합니다.



제네시스 발표현장. 프레스티지 라인을 위한 새로운 디자인실 구성은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느껴집니다. '인간을 향한 진보'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제네시스의 차별화된 기술은 뭐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여러번 강조되어 왔지만 우리는 철판부터 차에 맞춰서 맞춤형 강판을 만들 수 있다. 초고장력 강판을 많이 적용했는데 그것을 통해 차의 골격이 굉장히 좋아졌자. 다른 성능이 확보가 된 것이다. 거기에 맞춰서 샤시 기술, 후륜구동, 주행성능 역동성과 안정성이 검증됐다"고 했습니다. 현대차 설명은 항상 "설계단계 부터 현대제철의 초고장력강 기술이 본격 적용된 뼈대부터 다른 차"로 시작합니다.


제네시스의 차별화된 기술이 강판이라니 조금 갸우뚱해집니다. 재규어 랜드로버 같은 브랜드는 알루미늄 샤시를 강점으로 들기도 합니다. 물론 비싼 차니 가능하겠지요. BMW는 항공기 엔진을 만든 곳 답게 경량화에 대해 상당히 집착하는 모습을 뮌헨 BMW박물관에서 볼수도 있었습니다.


뮌헨 BMW박물관



자동차 강판에 대한 설명은 아마도 현대차그룹의 역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대차를 만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제철소 건설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습니다. 당시엔 강판을 공급하는 포스코가 상당히 고압적이었다고 하죠. 물론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지만요. ㅋ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제철소 건설에 성공해 포스코에 맞먹는 현대제철을 완성했습니다. 현대제철은 현대차의 돈 수조원이 투입됐습니다. 수직계열화는 이미 피할수 없는 현대차의 지상과제가 됐죠. 그렇다보니 현대차는 새차를 출시할때마다 초고장력강판이 어느정도 들어갔다는 설명이 고정 레퍼토리처럼 나옵니다.


물론 '인간을 향한 진보(Human-centered Luxury)'에서 안전은 가장 중요합니다. 좋은 강성 구조 샤시는 훌륭한 주행감을 만듭니다. 그런데 다른 자동차 브랜드는 왜 제철소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안전을 중시하는 볼보 같은 경우는 오래전부터 강판 보다는 샤시나 구조 기술을 발달시켜왔습니다.

또다른 산업 카테고리이긴 하지만 삼성의 경우 갤럭시가 애플의 아이폰에 견줘 턱없이 밀리는 현실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로서 경쟁하는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좀더 다른 장점과 스토리를 얘기해줄순 없을까요.




정의선 부회장이 이야기했던 산업화 시대에 잘했던 수직계열화, 각 계열사별로 이익을 조율해 자본을 모을 수 있었던 수직계열화, 현대차의 이 투자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또 제네시스의 라인업 출시 일정도 숨가쁩니다. 현대차는 2020년까지 6종의 제네시스 차량을 내놓고 브랜드를 완성하겠다고 했습니다. 올해말에 나올 에쿠스 후속 차량부터 계속 새차를 출시할 것 같습니다. 오래 준비했으니 준비는 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에쿠스 후속으로 첫 제네시스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EQ900 렌더링



오히려 경계해야할 것은 '빨리빨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 1위의 자동차제국을 만들고 싶었던 폴크스바겐은 마틴 빈터코른 전 회장의 미국 시장 공략 지시에 '디젤 게이트'라는 최악의 사고를 쳤습니다. 보도되고 있는 폭스바겐 안팎 말을 들어보면, 폭스바겐 직원들 가운데 누구도 회장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고 합니다. 독일 엔지지니어들도 까라면 깠나봅니다. ㅎㅎ 시이오가 완수하라고 하면 해야했겠죠. 이런 문화 속에서 폭스바겐 직원들은 고객과 정부를 속이는 장치를 엔진에 달고 말았죠.


제네시스 브랜드 출시 일정



지난해 현대차에 영입된 비어만 부사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기자에게 했습니다. 현대차로 옮겨와서 느낀 현대차 문화 특징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BMW와 달리 엔지니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고 합니다. BMW에서는 디자이너나 다른 부서에서 태클 거는 일이 많아 토론이 오랫동안 계속되는데,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토론이 없어서 일하기가 편하다고 합니다. 엔지니어 수장입장에서는 편하겠죠. 비어만 부사장은 물론 이게 긍정적이라고 평했습니다. 유럽차와 다른 문화가 흥미롭죠.


'인간을 향한 진보'라는 캐치 프레이즈는 아직 두루 뭉술합니다. 자동차 시장은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으로 내달리고 있는데 브랜드 이미지는 후발주자가 내밀기에는 약간 고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진짜 차가 나오면 첨단 기술과 조화를 시키겠죠. 라인업을 발표한 일정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차가 나오는게 더 중요한지 아마 현대차도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럼 동대문 DDP에서 열린 제네시스 발표현장을 본 느낌 정리를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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