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는 기업, BMW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 박물관 방문, 이들은 어떻게 나치 부역을 기록했나

by 이완 기자

과거는 현재를 만들고, 현재는 미래를 만든다.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얼마전 <JTBC>의 '내 친구의 집'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것처럼, 나치에 반대했던 이들을 모아 가스실로 보냈던 다하우 수용소 등 나치 만행 시기의 장소들을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2차 대전 뒤 만들어진 중동의 역사로부터 시작된) 중동으로부터 오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도 경제적인 이유 이외에 그들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이 아닌 기업에게도 과거는 중요하다. 특히 브랜드에 끼치는 이미지를 생각해볼때 소비재기업들은 과거를 기억하는데 매우 신중할수 밖에 없는게 사실이다. 박물관을 만들어 자동차의 역사를 기록한 독일 자동차업체에게는 이는 피해갈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독일 자동차 기업, 더구나 독일이 침략했고 지배했던 나라에게까지 진출한 자동차 기업들은, 그들의 기록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BMW 뮤지엄은 독일 뮌헨에 있다. BMW 공장과 본사 옆에 자리잡고 있으며, BMW 차를 산 이들이 공장에서 출고된 차들을 받으면서 BMW 역사와 공장을 함께 볼수 있게 설계됐다. BMW 본사는 포실린더 타워 모습으로도 유명하다.


BMW 뮤지엄에 들어가 어떻게 이륜차와 사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BMW 3시리즈는 어떤 변천사를 거쳤는지 보다보면 BMW의 감추고 싶은 과거를 드러낸 방에 도착한다.



이 방은 뮤지엄 한켠에 마련되어 있고 , 입장객 누구나 필수적으로 과거와 마주해야 하는 벤츠 박물관에 견줘 좀 작은 감이 있다. 물론 오로지 나치 시대를 드러낸 방은 아니다. BMW의 현재까지 이르는 과거가 모두 기록된 방이다.


펼쳐진 도록을 넘기기 시작하면 위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기자기한 구성이다. 도록을 찬찬히 넘기다 보면 독일 자동차 기업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어떻게 강제노동을 시켰는지 이해할수 있게 된다.



이 도록을 열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1940년대다.



여성 노동자도 공장에 투입되고



강제노동자들이 항공기 엔진 제작 라인에 투입됐다.




강제노동에 투입된 이들의 출신 지역은 이와 같다. 프랑스,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이 눈에 띈다.




BMW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BMW는 항공기 엔진 제작사로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의 정치적 목적을 쫓아 독일 무기 산업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40년 부터 회사는 강제노동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2년에는 나치에 비협조적인 이들을 모아놓은 수용소 노동자들을 노동력으로 투입했다. 오늘날 BMW는 BMW 역사의 어두운 부분인 강제노동의 상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옆 사진을 보면 영화속에서 보던 줄무님 차림의 강제노동자가 보인다.




2005년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1년 <한겨레> 기사를 보면, BMW의 대주주 또한 강제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의 세계적 자동차회사 베엠베(BMW)의 대주주인 크반트 가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대한 협력 행위를 공개하고 강제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독일 주간 <빌트 암 존탁>은 6일 베엠베의 아우구스트 슈테판 크반트 이사가 옛 나치수용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2차 대전 때 베엠베 공장에서 일했던 강제노동자들을 위해 500만유로(약 77억원)를 들여 기념관을 설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슈테판은 베엠베의 설립자인 귄터 크반트의 손자 가운데 한명이다. 슈테판은 기념관 설립 계획에 대해 “나치 정권 시절의 강제노역자를 기리는 과제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월말 크반트 가문은 베엠베의 나치 시절 행위에 대한 12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베엠베의 내부 자료를 활용한 이 보고서는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과 귄터 크반트, 그의 아들 헤르베르트 크반트의 회사가 12년 동안 깊은 협력 관계에 있었음을 밝혔다. 역사가 요아힘 숄티제크는 “크반트 가문과 나치의 범죄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며 “이 집안은 나치 정권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크반트 가문이 집단수용소에서 데려온 5만명의 강제노동자들을 나치 정권과 계약한 무기 생산에 활용한 사실을 적시했다. 이 가운데 수백명은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숨졌으며, 처형된 이들도 많았다. 또 크반트 가문이 나치가 유대인들로부터 압수한 수십개의 사업들을 넘겨받아 이익을 본 사실도 공개됐다.



과거의 역사를 반성한 기업은 현재와 미래를 나아갈 힘을 얻는다. 물론 연합국에 점령되었던 과거, 지울수 없는 사실 등에 따라 어쩔수 없이 측면도 있을 것이다.


독일 곳곳, 전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견학장소를 만들기도 했다. 그게 독일 자동차 또는 수출 기업의 힘이다.


반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에서 고전한 이유가 이때문이었다. 역사를 왜곡하려는 일본 정부의 조처에 대해 반일감정이 불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인 것이다. 도요타 자동차 등도 강제노역장을 운영했지만 이에 대해 사과하지는 않았다. 올해 여름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땀이 어린 하시마 섬(지옥도)을 자신들의 근대화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forced to work'라고 말했을뿐,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벤츠박물관과 일본 자동차 업체의 역사 (http://www.hani.co.kr/arti/economy/car/604116.html ) 기사도 참조.


그러나 한국 역시 이런 과거사 행태를 규탄하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나서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고(긍정의 역사만 남기려는), 청문회장등 공식 자리에서 총리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5.16쿠데타를 쿠데타로 규정하는데 머뭇거린다. 대통령이나 권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이 과거를 기억하는 나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BMW 뮤지엄에는 이 밖에도 BMW의 슈퍼카, 경량화, 레이싱 등 다양한 역사가 담겨있다. 그 이야기는 추후 기회가 되면 다시 하겠다. 원래 아우디 박물관 이야기도 담으려 했는데 글이 길어져 생략했다. 아우디의 과거 역사도 다음에 하겠다;;;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모터쇼 취재차 독일에 갔다가 들른 곳인데, 그동안 다른 기사가 많아 이제야 정리한다. ㅜㅠ



* 2016년 3월11일 업데이트

BMW 그룹은 2016년 3월 7일 독일 뮌헨에서 ‘BMW 그룹 10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BMW 그룹은 향후 기존 BMW 헤르베르트 콴트 재단과 에버하르트 본 쿠엔하임재단을 합병해 재단의 전체 기금을 5천만 유로 증가한 1억 유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매년 BMW 그룹으로부터 기부금을 수령하게 될 것이라 했다. BMW 그룹의 2016년 목표 기부금이 5백만 유로가 될 것이라는 계획도 공개했다.


사진1-BMW 그룹 100주년 기자간담회.jpg 하랄드 크루거 BMW 그룹 회장이 10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BMW 그룹의 비전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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