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다음날 분리장벽에 대해 알기 위해 라말라에 위치한 ‘식민과 장벽 저항위원회’을 찾았다. 특별히 건물에 이름이 붙은 곳이 아니라서, 주소만 가지고 찾아가자니 애를 먹기도 했다. 여기서 만날 카심 아와드 '폭력에 대한 기록과 출판 디렉터'는 이미 한국에서 미팅 약속을 잡은 터였다. 그를 통해 취재 아이템을 소개받기로 해서 기대도 됐다.
입구는 길 밑에 있었다. 마치 지하에서 올라가는 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카심 아와드는 진심으로 반겨줬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리는데 열심이라고 했으니, 이를 알기 위해 멀고먼 한국에서 왔으니 반가웠으리라.
카심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장벽을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뱀처럼 서안지구 땅을 뺏기 위해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카심은 특히 이 장벽 사이사이에 있는 300개의 검문소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검문소가 사람들과 의료서비스를 분리하고, 일자리와도 분리시켰다. 분리장벽은 팔레스타인을 분할하고 있다”고 했다. ‘저항위원회’는 분리장벽을 ‘합병장벽(annexation wall)’이라고 표기한다. 팔레스타인을 분리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잘게 쪼개어 나중에는 이스라엘에 합병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분리장벽은 이스라엘의 지배를 되돌리기 힘들게 만드는 벽이기도 하다.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은 1997년 31만명에서 현재 60만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서안지구를 팔레스타인의 영역으로 세운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아무도 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유대인 정착촌은 더 많이 건설되고 있다. 분리장벽을 따라가다 만난 ’모디인일리트’는 마치 우주 어딘가에 건설한 지구 식민지 같은 모습이었다. 황량한 고원 위에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안쪽에서는 하늘 높이 솟은 타워크레인이 건물을 세우고 있었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의 중간 지점, 모디인일리트는 그렇게 인구 4만명 규모의 유대인 정착촌이 됐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정착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현지언론은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의 부동산 경기가 좋다고 보도했다.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내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 밀려난 젊은 유대인 부부 등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만든 장벽에는 부동산을 노리는 욕심도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디인딜리트를 보니 답답함 밖에는 느껴지지 못했다. 거대한 벽을 마주한 무력감이랄까, 이스라엘이 거대한 분리장벽을 세운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리지 않았을까. 가자지구에서는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면서도 장벽을 넘지 못했고, 서안지구에서는 저항도 제대로 못한채 장벽에 의해 옥죄어졌다. 이것을 매일 보고 있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프리카 난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찾아건너갈 바다라도 있었지만, 이곳은 무언가를 건너가기도 힘든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