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기자 Sep 19. 2021

왕이가 온 날 쏜 SLBM

춘추관일기 17, 왜 이날 남북한은 미사일을 쐈나


삼십이립.

나이 서른이 되면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한 공자의 말인데, 묘하게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난 서른을 넘어 마흔도 넘겼는데,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기는 커녕, 왕이 부장 뿐만 아니라 이번주에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제대로 읽어내는데 역부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리 해보자. 


* 13일 월요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주가 외교 주간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한국 외교, 국방장관과 2+2 회담을 위해 한국을 찾은 호주 외교장관은 이날 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포용성과 개방성, 투명성 그리고 규범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혈맹'을 강조할 뿐, 인도태평양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데, 호주 외교 장관은 "역내에서 양국이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제"가 있다고 넌지시 중국을 겨냥했다. 

 (그동안 호주와 한국이 외교 군사 부문에서 협력하는 것을 잘 못봤는데, 어라, 왜 이리 호주가 한국에 와서 열심이지? )


* 15일 수요일 

(사실 문 대통령이 이날 미사일 전력 시험 참관을 한다는 것은 엠바고가 걸린 상태로 기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이 동북아의 치열한 군사외교가 펼쳐지는 날이 될 줄은 몰랐다 ㅎㅎ)


오전-왕이 중국 외교부장 청와대 접견


왕이 부장은 삼십이립을 인용하며 양국관계가 앞으로 30년을 잘 계획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난해 11월 방문 때와 달리 말이 길었다.  


"이 기회를 빌려서 저는 저의 감회를 몇 가지 대통령님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중한 양국은 비록 나라 상황이 다르지만 상대방이 선택한 발전도를 걷는 것을 지지하고 상호 존중하고, 상대방의 핵심적인 그리고 중요한 관심 사안에 대해서 상호 존중하고, 각자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리고 국민 정서를 상호 존중하고 이런 전통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이런 좋은 전통은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양국 관계의 건전한 발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협력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중한 경제 발전은 고도적인 상호 보완성이 있습니다. 양국 간의 협력을 때와, 그리고 지리적인 것에, 그리고 사람 간에 조화 등 여러 가지 이런 장점이 있습니다. 중한 수교 30년 이래 양국 간의 교역액은 이미 3천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인적 면에는 천만 명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그냥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의 중국 견제에 한국이 적극 동참하지 말라" 다. 


상대방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관심 사안이라면, 대만해협 등의 문제인데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공동성명을 통해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버렸다. 게다가 반도체 공급망 등 미-중 간 경쟁이 치열한 산업 분야에서도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중국이 왕이 부장을 보내, 문 대통령 면전에서 "상대방이 선택한 발전도를 존중하라"고 충고(?)한 셈이다. 그러면서 양국 교역액을 들먹이며, 한국의 경제는 중국에 깊숙이 의존하고 있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그러나 중국에 요구할게 많은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반박을 했는지는 서면 브리핑을 통해 뉘앙스를 파악할 수 없었다. 대신에 중국 쪽에 아쉬운 이야기만 잔뜩 했다. "베이징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되길 바란다" "미세먼지가 개선되도록 소통 활성화를 하자" "게임, 드라마, 영화 등 문화콘텐츠 교류하자(규제 좀 풀어달라)" 


접견 뒤 오후 - 국방과학연구소 미사일 전력 시험


(왜 왕이 부장이 한국에 있는 날 SLBM 시험발사를 했을까. SLBM은 북한만 노리는 무기가 아니라 은밀히 적국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자산이다. 중국 사절이 오는 날을 피해 쏠 수도 있었을텐데?? 의도된 것은 아니었을까??)


문 대통령이 전력시험 참관을 위해 청와대에서 헬기를 타고 이동할 때쯤 북한이 탄도 미사일 두발을 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청와대 설명대로라면, 미국이나 유엔이 어느 정도 양해하는 사안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급으로 위협적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왕이 부장이 한국에 있는 사이, 북한은 '나 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잘 봐라' 하면서 무력시위로 미사일을 쏴버렸다. 중국도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SLBM 발사 성공은 직접 지켜본 뒤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우리의 미사일 전력 발사 시험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적인 미사일전력 증강 계획에 따라 예정한 날짜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사일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 종류의 미사일전력 발사 시험의 성공을 통해 우리는 언제든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북한의 비대칭전력에 맞서 압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미사일전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해 나가는 등 강력한 방위력을 갖추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북한 도발 대응이 아니라, 자체적인 국방력 강화라는 설명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을 향해서는 우리는 억지력을 갖췄다고 말하려했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은채 행사를 진행했다면, 문 대통령은 SLBM 성공에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력만으로만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단 시간이 갈수록 엉켜진 머리만큼 글이 길어졌다....

동북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하면서 잠이 들었는데...




* 16일 목요일

미국이 핵잠 기술을 호주에 제공하면서, 미국-호주-영국의 군사동맹을 공고히 한다고 했다. 핵잠 기술은 미국이 영국 외에는 다른 우방에게 제공하지 않는 전략자산이다.  이로써 중국을 둘러싸고 미국-일본-호주-인도로 이뤄진 '쿼드'에 이어, 미국-호주-영국의 '오커스'도 만들어 2중의 벽을 만든 셈이다. 


호주? 아니 호주 외교, 국방 장관은 미국과 오커스를 만드는 중요한 대사를 앞두고 한국을 찾아, 인도태평양 전략을 말하고 갔을까? 이 시점에 왕이 부장이 들어온 것도, 남북한이 모두 미사일 실험을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격동의 동북아. 


매거진의 이전글 윤석열은 대북특사로 문재인을 보낼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