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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기자 Dec 27. 2015

넥슨은 어떻게 패스파인더가 됐나

넥슨의 21년  <플레이>를 읽고

"21년전 크리스마스 다음날 역삼동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시작된 긴 이야기다."


<플레이>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연히 들어온 책을 2015년 12월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꺼내들었다. 예기치 못한 문장과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난, 1994년 12월26일로 돌아가는 책장을 열었다.


"김정주가 나직하게 말했다. '다들 법인 카드 내역서를 가져와 보세요' 본부장들을 모두 모아놓은 회의 석상이었다. 본부장들은  당황했다. 대주주가 임원들의 법인 카드까지 들춰보겠다고 나섰다. 김정주가 회사의 일상적인 운영이나 소소한 재무에 직접 간여하기는 거의 처음이었다.

얼어붙어있는 본부장들 앞에서 김정주는 이렇게 말했다. '좀 과했네요. 술값이 이렇게 많다니요. 지금 넥슨은 게임이 안나오고 있잖아요. 인원만 엄청나게 늘어나 있고요. 뭔가 앞으로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게 아닌가요.' 그렇게 김정주 친정 체제가 복위됐다."



기업의 내밀한 이야기는 사실 접근하기 어려운 소재다. 어떤 결정이 이뤄지는지, 어떻게 그 결정에 도달했는지, 회사에서 내는 보도자료에는 내용이 없다. 단지 추측하고 전해들을 뿐이다.


넥슨의 21년 사사 <플레이>의 장점은 내밀한 이야기다. 한국의 제일 가는 게임회사인 넥슨에서 벌어진 일들이 1994년 창업 이전부터 현재까지 숨가쁘게 진행된다. 피자 먹는 이야기, 후배 회사에 냉장고를 놔주는 이야기까지 굳이 이런 것까지 묘사하나 싶지만, 사실 다른 기업의 사사에서 볼수 없는 풍성한 스토리이기도 하다.


"저는 그런 걸 보면 두려워요. 역사는 되풀이되거든요. 내가 그걸 이길 순 없다고 생각해요. 전 잡스처럼 하고 싶진 않아요. 나갔다 들어오고 그런 건 하고 싶지 않거든요. 가까운 사람들이랑 가끔 얘기해요.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누군가에게 회사를 넘겨줘야 우리도 살고 회사도 산다고. 그땐 좀 건실한 친구한테 잘 주고 가자고."


김정주 회장은 책 속 인터뷰를 통해 심지어 이런 이야기까지 한다. "나갔다 들어오고 그런 건 하고 싶지 않다고" 한국 기업에서 시이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자신의 진퇴에 관해서 말이다.


이 책 무척 흥미롭다. 자 계속 따라가 보자.


"부분 유료화는 곧 부분 무료화다. 전체를 유료화했을때 기대할 수 있는 매출과 수익을 포기하자는 주장이다. 부분 무료화 혹은  부분 유료화는 조직의 위아래가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면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사업모델이다.

넥슨이 부분 유료화를 게임업계에서 맨 처음 시도할 수 있었던 건 넥슨이 제일 똑똑해서가 아니다. 당시 넥슨이 제일 격의 없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개발팀이 만든 게임을 공짜로 줍시다. 대신 일부만 팝시다. 넥슨 안에선 이런 대화가 가능했다."


현재 게임의 대세, 아니 현재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대부분의 콘텐츠 기업이 하고 있는 부분 유료화 방식은 넥슨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도했던 방식이라고 한다. '퀴즈퀴즈'라는 게임을 전면 유료화했다가 실패했던 게 부분 유료화를 성공으로 이끈 자양분이 됐다.


"일대일 메일은 조직을 점조직화한다.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 저 말 하는 체제가 된다. 데이비드 리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데이비드 리는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객관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넥센을 더 체계적으로 회사답게 만들고 싶었다."


"최승우는 대우에서 해외시장에 대한 공포를 지워냈다. 넥슨에서 보여줬던 일단 부딪혀보는 방식은 대우 정신과 이어지는 구석이 있다."


"박지원 대표 명의로 공지가 올라왔다. 박지원 체제의 밑그림이 들어있었다. 넥슨은 임원들한테 부여했던 각종 혜택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실장들한테 주어졌던 주차장 무상 이용 권한 부터 각종 수당도 없애 버렸다. 실장들도 똑같은 비용을 내고 주차장을 이용하게 했다."



<플레이>의 장점은 책 속의 만화다. 넥슨의 경영 이념과 사람들이 설명돼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매출 0에서 1조원대로 올라선 기업의 성장사다. 우린 재벌. 이를테면 벌써 3,4세로 내려온 기업의 성장사 밖에 모른다. 그 과정에서는 창업주의 신화와 계승자의 능력 포장만 부각되기 마련이다. 도대체 기업이 커져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경영학 책은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경영학 전공을 하지 않았으니.


<플레이>는 이 길을 걸었던 넥슨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다. 초창기 스타트업의 문화와 커가면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겪은 혼돈, 성장과 함께 찾아오는 둔해진 모습 등등. 이 고민을 탈출하기 위해 데이비드 리 전 사장이 한 일대일 메일을 금하는 등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했다. 세계경영을 내세웠던 대우 출신이 게임은 잘 만들지만 해외진출은 해본 적이 없는 넥슨에서 큰 힘이 됐다는 것도 흥미롭다. 30대의 박지원 대표를 발탁한 이유도 넥슨이 초창기 야성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또 닷컴 버블 속에 줄줄이 회사들이 상장의 길을 택할때, 김정주 회장은 왜 그동안 줄곧 넥슨 상장을 미뤄왔는지 설명이 나온다. 매출액이 3000억원이 넘기 전에 주식공개를 하면, 투자 차익을 빨리 얻고 싶어하는 투자자들의 등쌀에 기업이 자신의 힘을 키울 수가 없다는 지론이 확실했다. 최근 다시 불어온 스타트업 붐 속에 '돈을 못먹는게 바보'라는 말이 돌 정도로 투자가 몰리고 있는데, 생각해볼만 지점이라 여겨진다.


이런 내용을 잘 드러내는 것은 역시 저자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지은이 김재훈, 신기주는 '넥슨 인사이트'와 인사이트가 담긴 만화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저자들은 김정주 회장을 오랜시간 인터뷰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을 인터뷰해 책을 썼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기업과 비교해낸 지은이의 혜안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너무 전형적인 표현인가;;; 책은 전형적이지 않다)


"창업주와 대주주와 최고경영자의 신격화는 동서고금의 기업들 모두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 구성원들의 기여는 지워지고 묻힌다. 넥슨은 부분 유료화가 모두의 결과물이란 걸 인정한다. 기업은 인간이 혼자서 할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만든 도구다. 다함께 이룩한 일을 혼자서 해낸 일처럼 포장하는 순간 기업의 존재가치는 사라진다."


책을 읽어본뒤 김정주 회장과 박지원 대표의 글을 찾고 싶어, 넥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회사 소개에 그 흔한 CEO 한마디도 없다. 대신 주소 옆에 대표 이름만 새겨 있을 뿐이다.


<플레이>는 한 기업이, 한 산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서사다. 넥슨은 게임이었고, 책은 '치트키는 알려주지 않은' 게임의 메뉴얼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넥슨 인들이 회사를 나간 뒤에도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모습이었다. 정상원 개발부문 사장도 그렇고, 이승찬도 그랬다. 회사를 나간 이들은 보통 회사 쪽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은 것을 우린 아주 많이 봐왔다.  그런데 나갔다 돌아올 수 있는 회사. 그게 사람의 힘으로 게임을 만드는 넥슨의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  수행비서도 없이 가방 하나 들고 해외출장을 다니는 김정주 회장의 힘이 아닐까. (우린 기업 총수의 의리의리한 의전을 많이 보지만 실제 미국 기업 회장들은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풀리지 않는 궁금증도 물론 있다.  넥슨은 올해 한바탕 엔씨소프트와 경영권 분쟁을 한 바 있다. 하지만 <플레이>는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경영권을 요구한게 아니라, 화학적 결합을 원한 것이라 설명한다. 또 각기 다른 게임의 영역에서 서로의 영역을 보장하는 신사동맹을 한 셈이라고 이야기한다. 분쟁의 다른 상대방인 김택진의 이야기는 없으니 좀 유보해서 볼만한 내용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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