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부실로 몬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경영권 다져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다 어쩌다 운좋게 아시아나항공 비즈니스석을 타본 적이 있었다. 루프트한자 코드쉐어였는데, 갈때 탔던 루프트한자와는 비교도 안되는 서비스에 무척 감탄한 적이 있었다.
하늘 위에서 이런 식사들이 제공되고, 잘 알다시피 라면도 끓여준다. ㅋ
지난번 아프리카출장때 만난 대충 이런거 주는 말라위항공 기내식하고는 비교가 안되지 않나.
물론 이 식사는 이코노미석이니 비교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간만에 비행기 관련 사진을 찾는데, 그냥 놔두기 아까워서 주제와 맞지는 않지만 이것도 한번 올려본다. 케냐항공 기내식이다. ㅋ
그렇다고 비즈니스석이라고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A380으로 바뀌어서 좋지만, 이전에 루프트한자 비즈니스석은 별로였다. 그냥 좀 자리가 넓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암튼 아시아나항공 비즈니스석의 서비스를 맛본 뒤에는확실했다. 돈 벌면 비즈니스석을 타야겠구나. (그러나 현실은, 그냥 출장 나갈때에도 비행기 값때문에 외국항공사 경유행 비행기밖에 고르지 못한다는 사실...)
찾아보니, 아시아나항공 서비스는 정평이 나있나보다. 12년 연속 '최고 승무원' 및 '최고 기내서비스' 상 수상.
지난해 12월18일 세계적인 비즈니스 여행전문지 글로벌 트래블러(Global Traveler)로부터 상을 받았다.
후아... 좋구만...
그런데, 좋은 서비스에도 말이다. 2주 뒤 아시아나항공은 경영정상화방안을 내놓았다. 구조조정이었다. ㅎㅎ
아시아나항공 사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예약영업, 국내선 공항업무와 본사 일부 관리업무의 외부 위탁, 일부 기종의 캐빈승무원 인당 서비스인원 조정, 희망퇴직과 희망휴직 제도 운영 등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노선 축소와 해외 지점 축소도 있었다. 유휴인력이 생기는 대규모 구조조정 방안이다.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회사는 지금까지 위기극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영업으로 번 돈으로 빌린 돈에 대한 이자조차 제대로 갚지 못하는 취약한 손익구조가 지난 2012년 이후 4년간 지속되면서 최근 들어 부채비율이 1,000% 수준에 이르는 등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라고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좋은 서비스에도 왜 아시아나항공은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왜?
먼저 신철우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위원장을 찾았다. 휴대전화 너머 신 위원장의 목소리를 씁쓸했다. 그는 근본원인을 따져봐야한다고 했다.
“회사가 현재 위기라고 하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근본적 이유인 2006년 대우건설 인수와 대한통운 인수에 대해 (경영진은) 말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부채비율(부채/자본금)이 200% 정도로 건실한 기업이었는데 2006년 이후 600%로 뛰었다. 지금 위기는 잘못된 인수 경영에 있었다. 그 부분이 중요하다.” 신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에서 20년 동안 일하며 그 과정을 지켜봤다.
시계를 2000년대로 돌려보자.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신생항공사로서 대한항공을 맹추격하고 있었다. 요즘의 제주항공 같은 형세였다. 모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잘나갔다.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 대우건설,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그 배경에는 금호고속과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이라는 든든한 계열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엄청난 투자를 끌여들여 대우건설을 인수한게 체해 버렸다. 투자자들에게 주가가 오르는 식으로 수익을 돌려주기로 했는데, 주가는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보장된 이익만큼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줘야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불경기 속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만한 돈을 마련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계열사들이 동원됐다. 당시 부도 위기에 직면한 금호산업의 기업어음을 아시아나항공은 2009년 12월 790억원어치나 사서 현금을 지원했다. 금호산업은 박삼구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지배하는 데 핵심적인 회사였다. 계열사들의 잇단 지원에도 엄청난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박삼구 회장은 결국 손을 들었다.
결국 금호산업은 채권단 관리에 넘어갔다. 아시아나항공이 산 기업어음 790억원어치는 출자전환됐다. 금호산업으로부터 받아야 할 이자도 감면됐다. 경제개혁연대는 “2013년에도 아시아나항공이 금호산업에 대해서만 96억원의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해, 상표권 사용료를 가장한 계열사 부당 지원이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으로서는 자신의 성장동력으로 써야 할 현금이 사라진 셈이다. 그룹도 위험해지니 신용도도 덩달아 위협받았다. 신용도가 떨어지면 돈을 빌리는 이자율이 높아진다. 악순환이다.
사실 2010년대 아시아나항공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이 출범해 성장하고 있었고, 외국 저비용항공사들이 국내 노선에 취항하기 시작했다. 중국, 동남아 노선 등 중단거리선의 매출 비중이 높은 아시아나로서는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장거리 프리미엄급 항공사로 가기에도 애매했다. 중동계 항공사들이 오일달러를 가지고 비행기와 공항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상황에서 이들과 경쟁할 상황은 아니었다. 터키항공이 전통의 루프트한자를 위협할 정도였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84대의 항공기도 그 기종이 다양해 정비·서비스 효율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리미엄급 항공사로 가기도, 저가항공사와 경쟁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투자가 필요했다. 경제개혁연대의 채이배 회계사는 “아시아나항공이 자신의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재벌 총수가 소유한) 금호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얼마나 부채가 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사용된 자금으로 인해 성장 가능성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이익은 9월까지 172억원을 기록했다. 금융비용 등을 빼면 1634억원 순손실이 났다. 2015년 상반기에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중국 관광객을 줄이는 등 영업에 타격을 줬다. 매출 비중이 높은 일본·중국·동남아 노선에는 저가항공사들이 치고 들어왔다. 아시아나항공의 2013년 영업이익은 615억원 적자, 2014년에는 422억원 흑자였다. 항공기 84대를 가진 매출 5조원대의 기업으로서는 부진한 실적이 계속됐다.
한국신용평가는 2015년 12월18일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낮췄다. 한국신용평가는 “(A380) 항공기 투자로 재무 부담이 과중한 수준이고, 저가항공사와의 경쟁이 심화돼 수익성 개선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997.4%(2015년 9월 기준)에 이른다. 부채비율이 높으면 회사가 돈을 벌어도 이자로 내는 비용이 많아 부담이 커진다. 아시아나항공은 2011년 A380 6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현대화된 비행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미 재무 사정이 안좋아진 아시아나항공에게는 버거운 규모였다.
한국신용평가의 김용건 파트장도 “항공사들은 비행기 도입 때문에 부채비율이 대체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기업은 이익이 나면 자본 확충을 하고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의 현재 상황은 그룹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12월30일 구조조정안이 발표되기 전날 오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산업 채권단에 경영권(지분율 50%+1주) 인수대금 7228억원을 완납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한 사실상 모회사다.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채권단 지분이 다른 기업에 넘어가면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경영권을 확고히 한 셈이다.
그리고 다음날 경영정상화안이 발표됐다. 아시아나항공에게는 진짜 혁신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저비용항공사 에어서울을 새로 만들고,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도입하겠다는 것도 그런 노력이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술렁이고 있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아오면서 들인 인수대금 7228억원 가운데 5700억원가량은 은행 대출 등 외부 자금이다. 다시 빚으로 지은 집이 됐다. 빚으로 그룹을 키웠던 재벌 총수의 욕심은 결과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그때가 생각날 수 밖에 없다.아직 되찾아오지 못한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등 계열사 자금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다고 증권업계는 본다.
직원들은 10년 동안 임금을 4번이나 동결하는 등 회사의 짐을 나눠 졌다. 돌아온 것은 경영을 악화시킨 총수의 귀환과 구조조정이었다. 이 상황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경영 혁신에 동참할 수 있을까. 직원들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이 회사를 위한 것인지, 돌아온 재벌 총수를 위한 것인지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