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알프스 여행
스위스 알프스 여행은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2003년 배낭여행때였다. 런던에서 시작해 유럽을 한바퀴 돌고 파리에서 끝나는, 그당시 배낭여행객들에게 '고전'과 같은 코스였다. 그 코스 중 스위스 알프스를 들러 남들 다간다는 융프라우에 올라간 게 다였다. 하지만 알프스를 본다는 것은 너무나 강력한 기억이었다.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경험담을 이야기할때 항상 나는 스위스가 최고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해 다음 여행지를 떠올렸을때 스위스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장엄한 산과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나뿐만 아니라 스위스가 처음인 가족에게도 추천할만한 여행지였다.
물론 알프스에는 융프라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테호른과 체르마트 등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지만, 한국인에게 융프라우가 가장 상징적인 장소로 보여서 스위스를 처음 여행하는 가족을 위해 보편적인 융프라우를 선택했다.
달라진 것은 있었다. 2003년 융프라우에 올라갈때는 아이거글래처 익스프레스가 없었다. 라우터부르넨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 정상까지 가는 게 보통의 코스였다. 한참을 올라가야 하니 팔팔한 대학생때도 기차 안에서 졸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린델발트에서 케이블카로 바로 아이거글래처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어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숙박은 라우터브루넨 대신 아이거 북벽을 볼 수 있는 그린델발트의 샬레로 잡았다.
취리히를 구경하다 조금 늦어, 산중에서는 해가 빨리 지기도 하지만, 그린델발트 샬레에는 해질녘 도착했지만, 창 밖에 보이는 경치는 그야말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왜 집주인이 자기 집 소개할때 이 북벽을 바라보는 발코니의 존재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나, 아쉬울 정도였다. 숙소에 도착했을때 이미 스위스 여행은 반쯤은 성공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외에도 아름다운 곳은 많았다. 융프라우는 기대했던 대로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설상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여줬다. 융프라우에 올라가는 날은 사실 그리 운은 좋지 않았다. 스위스에 가기 전부터 날씨를 계속해서 확인했지만, 융프라우에 올라가는 날에 맑은 날씨를 만나는 것은 그저 운에 달린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치도 못한 일이 있었다. 아이거 익스프레스를 타고 올라가서 아이거글래처에서 산악열차로 갈아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산악열차가 그날 마침 정비에 들어가 운행이 일시 중단되었다. 1년에 2~3차례 있는 것이라는데 거기에 마침 걸린 것 ㅜㅠ 아이거글래처에서 한시간 넘게 기다리며 다시 산악열차가 운행되길 기다렸다.
산악열차는 다시 운행을 시작했고, 마침내 융프라우에 올랐다. 2003년 이후 22년만인가.
잠시동안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생각을 해보다가 강해진 눈바람을 피해 내려왔다.
융프라우역에 도착하면 먼저 저 산위 전망대에서 융프라우의 설경을 감상한뒤 밖으로 나올수 있는 저 문으로 이동해 나와서 눈을 밟는 코스를 다니게 된다. 22년 전에도 그랬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낮은 기온과 구름이 갑자기 끼는 급변하는 날씨 속에 눈 구경은 급하게 마무리했다. 눈을 좋아하는 아이가 고산 증세 때문에 신나게 뛰어놀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꼭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최고의 풍경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올라가서 보면 뭔가 다를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오르지만, 돌이켜 보면 위에서 보는 풍경은 산을 자세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려오는 길에 만난 풍경은 융프라우가 진짜 어떤 곳인지, 스위스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준다. 융프라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때처럼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산악열차를 타고 천천히 돌아오는 길로 잡았다.
여기서 내려 하이킹을 하며 내려가는 길도 아름답다고 추천을 많이 받았지만, 이미 알프스는 겨울철로 접어들어 이 트래킹 코스들은 폐쇄된 상태였다. 그린델발트로 바로 내려가는 산악열차 노선도 폐쇄돼 우리는 뜻하지 않는 길로 내려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벵엔을 만났다.
라우터브루넨에서 인터라켄을 향하는 산악열차를 탄 뒤 구글 지도를 보니 벵엔 뷰포인트가 보였다. 어렴풋이 스위스 여행을 준비하며 본 글 가운데 이 뷰포인트에 대한 내용을 떠올렸다. 그래서 예정에 없이 우리는 벵엔에서 내렸고, 그리고 융프라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이 광대한 광경을 카메라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22년 전 나는 홀로 융프라우를 올랐지만 지금의 나는 가족과 함께 산에 올랐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다. 융프라우 최고의 장소는 어디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였는가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라우터브루넨 호스텔에서 융프라우를 올려다보며 눈이 동그랬던 22년전 나는 이렇게 흰머리가 늘어 내가 돌아올 줄 상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