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저널리즘스쿨,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좋은 기자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한겨레21>은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저널리즘 전문교육기관과 연계하는 교육연수생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금까지 두 차례 진행했다. 이번에는 <블로터>, 구글코리아와 함께 ‘넥스트저널리즘스쿨’ 2기를 공동 주최했다. 1월1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스쿨 강의 가운데 강의를 직접 듣지 못한 이들을 위해 일부를 옮긴다.
“나는 5공 때 기자를 시작했다. 당시 언론은 전두환을 ‘하늘이 내리신 대통령’이라고 보도했다. 전두환이 50살 생일을 청와대에서 맞았는데, 출입기자들이 대통령 생일파티를 해줬다.”
지난 1월20일, 서울 역삼동 구글코리아 대회의실에서 열린 넥스트저널리즘스쿨 5강.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의 이야기에 수강생 60여 명은 숨을 죽였다. <뉴스파타>는 시민 3만여 명의 후원을 받아 이명박 정부 때 해직된 언론인과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들 중심으로 설립된 독립언론이다. 김 대표가 스크린에 올려둔 강의 자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버킹엄궁 들어서자 비 그치고 햇빛 쨍쨍’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5공 때 언론은 일기(날씨)를 강조했다. 비가 오면 대통령이 가뭄에 단비를 몰고 왔다는 식이었다. 5공이 끝나고 각 언론사별로 노동조합이 생긴 뒤에는 또다시 비슷한 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저널리즘이 한 사회에서 제 기능을 못하고 실패했을 때 그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 우리가 지금 숱하게 보고 있다.”
미디어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신문, 지상파 방송에서 온라인 웹사이트로 옮겨가더니, 사람들은 이제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소비 시장뿐만이 아니다. 생산자인 기자 역시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원자료에 접근하기가 더 쉬워졌다. 온라인 메신저로 전문가들을 더 많이 더 쉽게 접촉할 수 있고, 무인항공기 드론과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의 발달로 숨겨진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첨단 기술과 함께 진화해야 할 뉴스 생산자들은 갈수록 욕을 먹고 있다. 제대로 된 정부 비판 대신 낚시성 제목으로 클릭 수나 올리려는 ‘기레기’,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 못하고 종이와 진공관 텔레비전을 움켜쥔 ‘낙오자’ 취급을 받는다.
넥스트저널리즘스쿨에 모인 이들은 다른 언론인을 꿈꾸는 모바일 세대다. 이들은 10~20대가 기성언론의 기사를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안다. 뉴미디어에 적합한 뉴스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돌아다니는 독자를 붙잡을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일까. 기사를 읽는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빅데이터를 통해 분석하고 목표를 정하는 전략은 뭘까. 또 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현란한 그래픽과 동영상을 만드는 것은 필수일까. 더 발달된 기술로 유통망을 어떻게 구축해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그러나 넥스트저널리즘스쿨은 ‘저널리즘’에서 시작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일상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속성이 거세된 것들이다. 지금 지면이나 방송 뉴스에 나오는 것은 90%가 보도자료나 기관의 대변인, 권력자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위기가 ‘비욘드’ ‘혁신’ ‘넥스트’로 바뀔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여기에 대한 동의 없이 콘텐츠 확산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초 없이 성을 짓자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 대표는 수단과 목적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탐사보도팀의 에디터 데이비드 리는 자료를 담은 노트북을 들고 인터넷이 안 되는 자신의 별장으로 가끔 향한다. 종이로 출력했다면 작은 도서관을 채울 만한 분량의 자료다. 그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혼자 분석했다. 예전이라면 많은 인력을 동원해도 몇십 년이 걸렸을 일을 홀로 해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그가 탐사보도하려는 내용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가려내고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기사를 어떻게 시각화하고 포장하는지는 그 이후의 이야기다.”(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김 대표는 ‘신발’이 탐사보도의 가장 좋은 재료라고 했다. 검색을 통해 데이터로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주소가 있으면 등기부등본을 뽑고, 하나하나 찾아 방문해 인터뷰를 시도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라는 것이다. 권력자의 뒤를 쫓고, 부지기수로 문전박대를 당하고, 도서관에서 산더미 같은 자료를 찾아내려면 튼튼한 신발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넥스트저널리즘스쿨 2기 수강생들의 지원서를 보면, 수단을 찾고 싶어 하는 이가 많았다. 대학 언론에서 일하는 이들은 더 이상 교지나 대학신문을 보지 않는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했다. 기존 언론사에 들어가는 대신 뉴미디어를 직접 만들 방법을 찾는 이도 있었다.
이런 이들에게 ‘기술이 저널리즘을 구원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뭘까. 좋은 언론인부터 되라는 고답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성규 <블로터> 미디어랩장은 “전통미디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먼저 들어본 다음, 다른 분야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봄으로써 수강생들이 저널리즘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려 했다. 뒤이어 실무적인 기술도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시대를 이미 겪고 있는 언론사 사례도 소개됐다. 이재훈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 기자는 신문사 편집국이 만들어낸 기존 콘텐츠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로 ‘불친절’을 꼽았다. 예전처럼 스트레이트와 해설, 속보 기사를 한 지면에서 보지 않는 상황에서 기사를 분리해 만들어내는 것은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한겨레> 디지털부문은 뉴스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설명하되 팟캐스트 등 플랫폼을 다양하게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기성 언론 가운데 20대 뉴스 소비자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평가받는 <스브스뉴스> 사례도 주목받았다. <스브스뉴스>는 SBS 뉴스의 서브 브랜드다. 권영인 SBS 기자는 <스브스뉴스>의 성공 비결로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 것’을 들었다.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카드뉴스를 만든 게 많은 자원이 투입된 인터랙티브 뉴스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 했다.
넥스트저널리즘스쿨 1주차 강의의 핵심은 ‘실패’였다. 언론사 디지털 담당자들은 자신의 실험이 성공보다 실패의 역사라고 했다. <스브스뉴스>는 6개월 사이 서너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콘셉트를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저널리즘 구현에 다가갔다고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