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의 시대를 읽고
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자동차 디자인을 뽑으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한국 자동차 중에 애써 고르라면 아마 YF쏘나타가 처음 출시됐을 때 반응(지금의 쏘나타 디자인은 보편적인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정도가 생각난다. 이것도 지금 보면 그리 희한하지는 않는데, 이상한 디자인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테일핀’이다.
테일핀은 트렁크 위에 길쭉하게 솟아오른 생선 꼬리 모양처럼 생긴 디자인을 말한다. 오래된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끔 나오는데 바람을 가르는 것인지 바람을 막는 것인지 아리송한 디자인을 보면 그게 틀림없다. 한 미국 자동차 업체는 1960년에 이를 두고 ‘방향 안정기’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테일핀이 없는 보통 차보다 더 곧고 똑바로 주행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나 뭐라나. 하버드 경영대학원도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대형 테일핀을 창시한 크라이슬러 임원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했다니 믿을 만도 하겠다.
하지만 <엔진의 시대>를 쓴 미국의 폴 인그래시아 기자는 이를 두고 “터무니없는 언어도단”이라고 했다. 지금이야 ‘테일핀이 방향 안정기라니 그게 말이 돼?’ 하고 넘어가지만, 당시는 미국이 소련과 군비 및 우주 경쟁을 하던 때였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인 디트로이트에서도 ‘큰 놈이 짱이다’라고 경쟁이 붙을 때라 큰 꼬리를 붙여놓고 ‘조종이 더 잘돼’라고 해도 믿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당시는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인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미국 자동차에 자유와 방종, 화려함을 뽐낼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고 테일핀 디자인은 그때의 상징이었다.
( 글을 보시고, 한 분이 '테일핀'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책과 달라 소개합니다. "테일핀은 자동차의 직진 안정성 및 고속 선회시 안정성에 영향을 주는 공력 부품입니다. F1및 LMP1등 경주차도 리어윙과 함께 테일핀과 유사한 구조를 적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구요. 물론 차체 디자인에 따라 직진 주행 안정성이 향상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테일핀이 풍미하던 1950년대에 미국인들은 정부 관리, 성직자, 교육자, 기업 임원들을 대체로 믿고 신뢰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이 계속되었고, 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났으며, 캠퍼스의 소요는 불안하기만 했다. 거기세 쉐비의 콜베어가 가세했다. 권위에 대한 불신이 새로운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엔진의 시대> 200쪽)
얼마 전 손에 들어온 <엔진의 시대>를 읽는 것은 흥미진진했다. <로이터> 편집부국장을 지낸 저자 폴 인그래시아가 15대의 자동차로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해부했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은 잘 빠진 스포츠카 머스탱의 판매를 늘렸고, 베이비붐 세대는 아이가 생긴 뒤 스포츠카와는 딴판인 미니밴으로 갈아탄다. 결혼한 여성은 아이 학교와 스포츠클럽을 왕복하는 ‘사커맘’이 됐고, 인구학적으로 이를 알아본 크라이슬러는 미니밴을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
자동차가 급증하면서 품질 불량에 대한 관심도 늘어난다. 제너럴모터스가 만든 자동차 '콜베어'는 설계 결함으로 오버 스티어링이 발생했다. 회전구간에서 튀어나가는 자동차는 위험했다. 1960년대 이 자동차 회사의 책임을 묻는 변호사 랠프 네이더가 혜성같이 등장해 소비자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법원은 1960년대 중반부터 내재적 설계 결함을 증거로 채택했고, 소비제품에 의해 야기된 우발적 사고의 경우, 그 부담은 제품 판매자들이 져야 하는 쪽으로 법률가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스타가 된 네이더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 선거에서 네이더는 플로리다주에서 9만5천 표를 얻었다. 당시 공화당 후보 조지 부시는 그보다 1800표를 더 얻었다. 부시는 일반 투표에서는 앨버트 고어에게 졌지만, 선거인단에서 우위를 점했다. 연방대법원이 플로리다에서 그가 거둔 간발의 승리를 타당하다고 인정하면서였다.
네이더가 만약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득표 대부분이 고어 차지였을 것이다. 콜베어가 없었다면 네이더는 대선 따위와는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콜의 그 결함투성이 차가 뻗어버리고 나서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국인의 삶을 규정했다. 콜베어의 유산이 부시를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엔진의 시대> 205쪽)
또 아이를 가지지 않은 ‘여피족’(도시의 젊은 고소득자)의 선택은 BMW였다. 미국에 점령됐던 독일의 작은 자동차 업체는 미 중산층의 꿈이 된다. BMW만이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은 모든 자동차 업체의 결전장이었다. 폴크스바겐이 효율 좋은 ‘비틀’을, 혼다가 잔고장 없는 ‘어코드’를, 도요타가 연비가 뛰어난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를 들고 침공한다. 아쉬울지 모르지만 현대자동차는 여기에 끼지 못했다. 외국 자동차 브랜드의 약진과 고유가는 테일핀부터 시작해 픽업트럭까지 덩치 큰 차를 선호한 미국 자동차 업체를 코너로 몰아버린다.
1970년애데 두차례 석유파동이 일어났고, 휘발유 가격이 치솟았다. 거의 모든 자동차 제조사가 전륜 구동 방식으로 갈아탔다. 차의 무게를 줄이고, 연료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던 바, 폭스바겐마저 그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BMW는 후륜구동방식을 고수했다. BMW 엔지니어들의 고집은 대단했다. 날렵한 차로서의 성능을 유지하려면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중량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했고, 그러려면 후륜 구동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륜 구동방식을 채택하면 절대로 BMW를 운전하는 느낌 안 난다." 한 임원이 여러 해 후 능글맞게 한 말이다. (<엔진의 시대> 355쪽)
책은 '자동차의 미래' 챕터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다룬 뒤 끝을 맺는다. 책은 최근 떠오른 자율주행차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운전면허를 따고 첫 시동을 걸고 바퀴를 굴리는 것에서 흥분을 느꼈던, 자동차가 전자제품처럼 변해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충분히 향수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