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쉴 틈 없이 서킷 도는 경주, 하지만 즐기는 건 여유지게
‘마라톤’ 같은 자동차경주가 있다.
'르망24'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 마라톤이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서 열리는 ‘르망24’는 차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자동차 경주 대회다. 대회 이름에서 보듯 경주차들은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 부서지거나 기권해야만 서킷에서 빠질 수 있다. 선수 3명이 교대로 운전해 13.629㎞의 서킷을 돌고 또 도는 방식이다. 가장 멀리 가야 이기는 경주니 천천히 달리는 건 르망이 아니다.
경주차들의 속도는 평균 200㎞/h 이상이며 빠른 구간에선 무려 300㎞/h가 넘는다. 서킷에서 보면, 차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더 빨리 경주차가 사람 옆을 지나친다. 육상에서 장거리 선수는 단거리를 못 뛰고, 단거리선수는 장거리에서 약하다는 법칙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올해 대회는 지난 6월13일(현지시각 기준) 프랑스의 작은 도시 르망에서 열렸다. 르망? 한때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현대차에 앞서 외국으로 나갔던 대우차의 준중형세단 '르망'이 이 도시의 이름을 따서 차명을 지었다고 한다. 1923년부터 시작한 이 대회는 르망에서 매해 6월 둘쨋주 또는 셋쨋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한국 팬들도 대회 며칠 전부터 들썩였다. 최고 성능을 갖춘 자동차경주를 즐길 뿐만 아니라, ‘피트스톱’(수리·주유·운전자 교체를 위해 경주로를 벗어나는 것)한 경주차를 1분 내에 수리하는 엔지니어들의 환상적인 팀워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대회는 지난해 르망24에 복귀한 포르셰가 그동안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아우디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드라이버는 얼 밤버(뉴질랜드) 니코 휼켄베르트(독일) 닉 탠디(영국) 등 다국적 연합군이었다. 이들은 최신 919하이브리드를 몰았다. 919 하이브리드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224.2㎞, 경기 중 최고속도는 시속 340.2㎞였다.
이 경주를 손꼽아 기다린 팬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4시간 동안 경주를 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국내외에서 올해 ‘르망24’를 본 두 자동차 칼럼니스트에게 물어봤다. 올해 아쉽게도 난 경기를 본방 사수하지 못했다. 대신 유튜브에 올라온 경주 영상만 봐도 레이싱카의 엔진 배기음에 '심쿵'했다.
- 신동헌 <레옹> 편집장님, 경기를 24시간 보셨나요?
“르망에서도 24시간 내내 보는 사람은 없어요. 한쪽에서 음악도 듣고 쇼핑도 하고, 그러다가 또 경기 보고 했죠.”
“프레스센터에 가면 경주팀도 거기 있는데, 선수들과 밥도 같이 먹어요. 그런데 선수들이 피곤한데도 신경이 곤두서 있지 않아요. 기자들이 물어보면 답도 해주고, 사진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찍어요. 축제예요.”
신동헌 편집장을 올해 르망24를 프랑스 현지에서 봤다. 그가 말하는 르망24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24시간 눈에 핏발 세우고 우승을 향해 뛸 것 같은데 (실제로 쪽잠 자면서 24시간을 버티는 선수와 엔지니어 사진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선수건 팬이건 르망24는 자동차경주를 한껏 즐기는 축제란다.
“새벽이 되면 경주 중계 스크린을 나눠 한쪽에선 자동차경주 영화를 보여줘요. 영화와 현실을 함께 볼 수 있는 거죠. 한참 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낯이 익은 사람이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루퍼트 슈타들러 아우디 사장이 수행원도 없이 와서 보고 있었던 거예요.”
또 “새벽까지 졸면서 경주를 보다가 잠시 호텔방에 샤워하러 갔다. 르망에는 르망24가 열릴때만 쓰는 임시호텔이 있다. 고시원처럼 생긴 곳이다. 작은 방인데 공동 화장실이랑 목욕탕이 있다. 아우디가 셔틀(자동차로 호텔과 경주장 사이를 태워줌)을 해준다. 호텔에서 씻고 나와서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사람이 루퍼트 슈타들러 아우디 사장이 있던 적도 있다. 선수도 직원도 누구나 줄서서 기다리는 곳이다.”
물론 르망까지 가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씨는 국내에서 한 자동차튜닝샵에 모여 자동차경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맥주를 마시며 인터넷 중계로 르망24를 봤다.
-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님은 르망24의 어떤 게 재미났나요?
“아우디가 몇 년째 우승하니까 핸디캡을 줬어요. 아우디 디젤차의 연료통 크기를 줄였죠. 급유를 위해서 자주 ‘피트스톱’하게 만들면 그 시간 동안 다른 팀이 더 앞서나갈 기회를 주니 대회가 계속 재미있을 수 있죠.”
“르망24는 최고 클래스(LMP1)와 아래 클래스의 경주차들이 같은 코스를 함께 돌아요. 자동차경주에선 추월하려는 차가 나오면 비켜줘야 하는데, 그게 타이밍이 안 맞거나 비켜주기 애매한 경우 충돌하기도 하죠. 지뢰밭이 깔려 있는 도로를 질주하는 거예요.”
함께 뛸 친구도 있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도 만나는 게 축제가 아닐까. 또, 영원한 승리자도 없다. 아우디의 독주를 포르셰가 경주에 복귀한지 2년만에 저지했다. 아우디의 지난해 우승팀은 올해 3위를 차지했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는 지난해 새 하이브리드 엔진을 달고 르망24 평정에도 나섰지만 올해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르망24는 그렇게 인생을 닮았다.
* <한겨레21> 1069호에 실린 "아우디 연료통 크기가 줄어든 이유는?" 기사를 바탕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