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층짜리 밀리오레, 온라인 유통
상승세가 멈출 것 같지 않던 화장품이 마침내 수출 역성장을 맞이했다. 2022년에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13.2% 감소한 79.6억 달러를 기록했다. 5대 유망 소비재 중 유일하게 전년보다 역성장을 했고, 그 폭 또한 크다. 5대 유망 소비재로 선정된지 불과 3년만에 난관에 봉착한 듯하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근본부터 고민해야 한다. 한국 화장품만이 갖고 있는 매력 포인트를 어필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의 유통 현장에서도 한번 판매 후 재구매가 이어져야만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재구매가 일어나려면 상품 자체의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표 00> 5대 유망 소비재 수출 추이* (백만달러, 전년동기대비%)
* 산업통상자원부 발표(2023.1)
코로나19 발발 이후 주춤했던 화장품 수출은 2020년 6월부터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2021년 12월까지 19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상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2022년에는 기존의 상승세와 정반대의 상황이 한 해 내내 이어졌다. 2022년에 5월을 제외하고는 매월 전년 동기보다 수출실적이 하락했다.
중국에서 COVID-19 이후 방역정책과 더불어 비관세장벽이 강화되면서 10여년 간 누려왔던 중국에서의 K-뷰티 위상은 변화를 맞고 있다. 기업들은 미국, 일본 등을 대안으로 가져가고자 하지만 절대 금액에서 중국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감소분을 상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많은 이들의 기대처럼 화장품이 우리나라의 효자상품 노릇을 계속해줄 수 있을지 말지는 앞으로 몇 년간 기업들의 간절한 노력에 달려있다.
만약 현재 해외로 수출을 하고 있다면 거래처를 잘 지켜라. 수익 나는 유통 채널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대다. 국내유통과 수출의 순서가 따로 없다. 이익 나는 채널, 거래처가 있다면 집중해서 잘 지켜야 한다.
COVID-19의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롭스, 랄라블라가 사라졌다. 이제 더욱 굳건한 올리브영의 시대가 되었다. 올리브영은 이미 압도적 경쟁우위를 보여주고 있었고, O2O 전략, 픽업서비스 등을 통해 고객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시코르가 어느 정도로 성장해서 시장을 나눠가질 수 있을지는 아직은 불확실해 보인다. 많은 화장품 브랜드들이 올리브영 입점을 꿈꾸지만 입점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돼있다 보니 이 채널을 주력채널로 가져갈 수 있는 브랜드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원브랜드샵들은 점차 점포수가 줄어들고 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화장품 시장을 차별화하며 그 성장을 이끌어오던 원브랜드샵들은 씁쓸하게도 고객에게 어필할만한 매력을 잃은지 오래인 듯 하다. 일부 제휴 브랜드의 제품을 빼곤 다 자체 브랜드 제품들을 취급하므로 원브랜드샵 역시 신생 소기업들이 입점할 여지는 적다.
화장품 박람회들이 엔데믹 시대를 맞아 다시 정상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한참동안 멈춰섰다 다시 출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해외 바이어들은 오프라인 박람회를 찾아다니는 대신 온라인 화상상담으로 가격조건 좋은 거래처 골라내는 방식의 효율성에 재미를 붙인 듯 하다. 아직까진 박람회에 진성 바이어들이 오지 않고 있다. 바이어들이 오지 않으니 기대를 갖고 큰 비용을 들여 참가한 업체들은 실망을 거듭해 박람회 참가를 포기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의 박람회 찾는 발길도 게 줄었다. 현장 매출이 COVID-19 이전 매출의 절반도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올리브영 말고는 되는 곳이 없으니 화장품 회사들은 온라인 채널에 집중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온라인 밖에 팔 데가 없다.
팔 곳은 온라인밖에 없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고객이 바뀌어서 그렇다. COVID-19로 오프라인의 유통채널 대신 온라인 쇼핑을 많이 하게 되면서 이제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COVID-19 기간이 석달이었다면 다시 고객들이 오프라인으로 돌아왔을텐데, 무려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온라인 쇼핑만이 익숙한 채널이 되어버렸다.
이미 화장품 업계에서 몇 년을 버티면서 경험이 쌓인 곳들은 온라인 안에서 매출을 잘 일으키겠지만, 사실 온라인 채널은 어떤 면에서는 가장 판매가 어려운 채널이다. 입점은 쉽다. 하지만 광고를 하지 않으면 그 어느 곳에도 노출이 되지 않으니 입점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동대문에 종합 패션 쇼핑몰 밀리오레가 있다. 온라인에서 상품을 파는 것은 100층 짜리 밀리오레에 입점하는 것과 같다. 9층 건물인 밀리오레에 과거 2,000개 넘는 점포가 있었다. 지금 3만개에 달하는 수많은 화장품 사업자들이 거의 모두 온라인 판매를 시도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화장품 온라인 판매는 100층 짜리 밀리오레에서 화장품 파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스마트스토어, 쿠팡에 입점을 해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광고비를 지불해야만 1층, 또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잠시 팝업 매대를 내주는 것과 같다. 광고비를 내지 않으면 도로 100층 구석진 매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나가는 손님들 눈에 띄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쓰는데, 돈 쓸 때만 매출이 살짝 느는 것 같고 비용을 줄이자마자 원래의 매출로 돌아가버린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내 제품은 어디에 가서 팔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