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사춘기가 징글징글하다. 큰 애는 혼자 조용히 삭여내고 싶어 하지만 종종 표출이 된다. 때로는 한없는 슬픔으로, 분노로 혹은 절망적 무기력으로. 작은 애는 소셜미디어의 충성스러운 신봉자가 되어 한 달에 수십만 원의 용돈이 있어야 품위유지가 된다고 믿는, 물질 만능화 고속 진행 중인 초등학생이다.
요즘 세상 속의 아이들은 내가 살던 때의 소녀들과는 너무나 달라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변해 버렸으니 겪어 내야 하는 경험들도 너무나 달라졌겠지. 그 다름의 벽이 너무 높아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봐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속은.
그래서 기억 소환을 해보려 한다. 내 사춘기는 어떠했던가.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부터 일 년을 미국 살이를 하느라 나의 십 대는 적응과 생존, 그 자체였다. 처음엔 말이 안 통해서, 다음엔 반 아이들의 차별과 무시가 기가 막혀서. 쫌 학업 진도를 따라갈 때 즈음,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또 여자 중학교의 문화가 적응이 안돼서, 게다가 월반으로 인한 학업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아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고등학교에 와 있었고, 또 바로 학력고사가 코앞이었다.
그 오륙 년의 기간 동안 나는 몇 가지 아주 중요한 인생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첫째, 미국이란 곳에서 나는 그때까지 내 인생의 길잡이였던 공부 중심의 위계질서가 범세계적인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다. 공부의 신성화가 매우 발달되어 있던 우리 집, 그 안에서 공부 잘한다는 자부심에 기대어 살아온 나의 12년의 인생이 휘청거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공부를 놓고 딴짓을 할 배짱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나에게 공부의 중요성이 기존에 비해 반 이하로 훅 하고 떨어지는 경험을 이 때 하게 되었다.
두 번째,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억울한 나의 어쩔 수 없는 '조건' 인지 나는 깊이 느꼈다. 주변의 잔소리나 시선은 둘째 치고, 당시의 학교 교육만으로도 헌신적인 현모양처가 되어야만 하는 압박감이 굉장했다. 반면 어려서부터 일과 재정적 능력, 독립적인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좋은 아내와 며느리, 엄마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에 강하게 반항했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우자에게 나의 인생의 주도권과 행복의 결정권을 맡기는 건 너무 큰 도박이라고 확신했던 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세 번째, 종종 늦게 자는 날이 늘어나면서, 엄마와 아빠의 다툼을 자주 듣게 되었다. 보통 술 한잔하고 오신 아빠가 엄마에게 한두 시간을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게 대부분이었다. 왜 좀 더 조아리고 절대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건지, 친구들 앞에서 왜 술을 그만 마시라 잔소리를 하는 건지.. 등등의 내용이었다. 아빠와 엄마의 신분은 동등하지 않다는 걸 그렇게 몇 년의 엄마 아빠의 다툼을 통해 새기며 살았다. 남편의 능력과 배려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그다지 녹록치 않다는 나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해, 1) 기존의 알고 믿어왔던 가치 체계는 무너지고, 2) '나'라는 사람의 사회 안에서의 상대적인 위치가 얼마나 볼품없는지에 대한 자각이 빰을 때리는 동시에, 3) 절대적인 안정과 사랑의 둥지라 믿었던 부모님의 품이 사실은 결함과 모순 투성이의 엉터리 사기 조직(?) 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게 나의 열두 살부터 열일곱 살의 시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기억을 살려 쓰고 보니, 나름 복잡하고 힘든 시기였다. 사는 데 중요한 것들이 무얼지 이해해 보려 무단히 애를 썼던 시절. 포기할 것 포기하고 - 교육이 신부 수업이던 당시의 시스템 - 내가 꼭 취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마음 다짐도 해야 했던 시기. 그래도 나는 몸도 멘탈도 성적도 별 탈 없이 그만하면 잘 보냈더라는 새삼스런 감회와 뿌듯함이... 내가 큰 효도는 안 해봤지만, 이 정도의 힘든 사춘기를 묵묵하게 또 밝게 살아낸 나름의 업적이 있었네.
우리 딸들도 비슷한 관찰과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믿던 세계 질서가 사실은 전혀 혼란 투성이임을 알게 될 것이고, 세상에는 불평등한 서열이 있다는 것도, 자신들의 위치가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되고, 부모란 사람들이 사실은 허무하게 실망스러운 보통 인간들임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안 우울하고 안 힘들까.
보들보들 푹신푹신한 아동기에서 단단한 성인이 되기 전에 거쳐가는 사춘기. 현실의 삶을 알아가고 처음으로 경험해 가는 시기. 그러면서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던 부모와는 서서히 거리 두기를 시작하며 독립을 도모하는 시기.
이렇게 쓰고 보니, 사춘기는 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임에 틀림 없다.
특히 엄마라는 존재가 초인적인 강인함과 현명함을 장착해야 하는 시기라는 걸 잊지말길.
너무 아슬아슬 곡예사 같은 요즘 나날들.
잘 살아내자.
사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