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보고 싶어서, 포틀랜드 _ Intro
가 보고 싶어서, 포틀랜드
나는,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30대 중반의 6년차 회사원이다. 서울에서 집과 차, 여가생활을 한번에 모두 가지는 것은 힘들다는걸 깨달으며, 그 사이에 균형을 잡고자 노력하는 흔한 직장인이다. 한 때는 책과 노래, 커피, 그리고 술이 있으면 평생 즐거울 줄 알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것 정도만 이제 알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을 먼저 한다는 것과 동일한 뜻일지 모른다. 필연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일치한다면 너무나 축복받은 일이겠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진 않으니까. 나 또한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뤄놓고 해야 할 것을 먼저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평범한 사회인일 뿐이다.
그러다 문득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해야 할 것에 실패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하게 되면 자괴감도 느껴진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필요한 것만을 하게 된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하루가 만들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어른이 된 거라고 서로를 위로한다.
여행은 이러한 루틴에서 나를 잠시나마 꺼내주는 역할을 한다. 해야 할 것, 하지 않을 것에 대한 강박을 조금 내려놓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허락하는 시간으로 기능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금 나를 일상의 루틴으로 끼워 넣는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잃어버린 나를, 여행지에서 찾는 과정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또다시 짐을 꾸리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를 좀처럼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는 내게 큰 인상으로 남았다.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이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는 모습은 나와 퍽 닮아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혜원은 안식을 얻는 곳이 고향이며, 나는 여행지라는 것이다.
우연히 비행기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다시 본 리틀 포레스트의 이 장면은 내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혜원이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 친구인 은숙은 혜원을 달려와 안아주며 보고 싶었다고 한다. 어쩌면 도착할 목적지에 은숙과 같은 친구는 없을지 몰라도, 내가 잠시 잊었던 나의 옛 모습 또는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가지고 이번에도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일은 2019년 10월 3일 목요일, 목적지는 미국의 포틀랜드와 시애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