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보고 싶어서, 포틀랜드_지갑을 지켜라
포틀랜드는 쇼핑의 천국이다. 해외직구를 하면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배송대행지에 '포틀랜드' 주소가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이다. 우선, 포틀랜드가 위치한 오레건주는 소비세가 없다. 물론 그 세수를 근로자의 소득세나 직접세를 통해 벌충하는 구조이지만,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음식점이나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받는 영수증에 세금 항목이 0$로 찍히게 되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즐거움이 마음속에서 올라온다. 덕분에 사소한 물건에도 지갑이 쉽게 열리게 되는 곳이다.
나는 포틀랜드 여행을 계획하면서, 여행 중 구매할 물건 목록과 방문할 쇼핑 장소들을 대략 준비해두었다. 기존에 쓰고 있었던 고장난 휴대폰을 대체할 새 휴대폰, 한국까지 배송이 어려운 미식축구 유니폼과 관련 굿즈 같은 것 들이다. 그리고 포틀랜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이키 매장과 각종 쇼핑센터 방문 또한 일정에 추가하였다.
포틀랜드 여행코스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이키. 나이키와 오레건은 떼 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나이키의 시작은 오레건 대학의 육상 코치와 운동선수의 만남이며, 나이키의 상징적인 로고인 스우시 또한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태어났다. 나이키는 그들의 실험적인 러닝 라인의 이름을 “오레건 프로젝트”라고 명명할 정도로 오레건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무언가 특별한 상품이 있지 않을까'라는 조금은 기대를 가지고 다운타운의 나이키 매장을 방문했었다. 명색이 나이키의 근원이자 뿌리인 포틀랜드 아니겠는가! 그러나 포틀랜드에서만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특별한 상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후에 방문한 시애틀 다운타운의 매장과 구별되는 특징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숙소 근처에 위치한 나이키 커뮤니티 스토어에서, 다운타운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맘껏 쇼핑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 있었다.
나이키 최초의 아울렛인 포틀랜드 커뮤니티 스토어는 자신들의 뿌리가 로컬에 기반하고 있다 선언한다. 여타 도시에 있는 팩토리스토어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지역민들을 고용하며 지역조직에 꾸준한 기부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Celebrating local champions”라는 문구가 매장 입구에 써져 있는 이 매장은 포틀랜드의 다운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매장은 지역민들이 사는 거주지역에 잘 녹아들어 있었으며, 주민들의 건강한 체육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라인의 상품들과 아울렛으로 이월된 재고들이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상품들 덕분에 다운타운까지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쇼핑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이키 매장 이외에, 포틀랜드에서 많이 찾는 아웃도어 브랜드로는 파타고니아와 컬럼비아가 있다. 그중 파타고니아는 흔히들 오레건/ 포틀랜드의 브랜드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캘리포니아 남부 기반의 아웃도어 브랜드이다. 파타고니아는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들이 대자연에서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내구성과 기능성을 갖춘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또한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 대자연 속에서 사용되기에,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브랜드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가장 진보적인 성향인 오레건 주의 브랜드로 인지되고 있는지 모른다. 다운타운에 크게 위치한 파타고니아의 매장에 들어서면, 오리건과 포틀랜드의 자연환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후리스를 찾아 헤매는 수많은 한국인도 있었다.
다운타운에서 지나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쇼핑장소는 파월북스Powell’s Books 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인 파월서점은 신간은 물론이고 중고서적 또한 취급하는 오레건 최대 규모의 서점이다. 다운타운의 한 블록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이 거대한 서점은, 8곳의 섹터와 1개의 카페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공간을 상징하는 색깔로 구분되었다. 서점의 큐레이터가 직접 적은 추천사를 보며 높은 책장 사이를 헤매고 있으니 마치 책의 숲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점은 3층에 위치한 고서적 섹션과, 각 섹션의 중간중간에 위치한 포틀랜드 관련 굿즈 테이블이었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고서적이 별도로 나뉜 보존서고에 비치/판매되고 있던 고서적 섹션은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서점을 헤매다 우연히 우리 일행인 지누를 우연히 마주쳤다. 지누는 곧이어 밝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이렇게 신나 하는 모습 이 도시에서 처음 봐!”
그럴 법한 것이, 서점의 사방에 진열되어 있는 귀여운 포틀랜드 관련 상품과 재미있는 책들은 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지갑이 술술 열릴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아동용으로 출간된 사회운동 관련 서적과 “Read Rise Resist”스티커는 이 도시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귀여운 아이템들이었다. 지누가 본 내 모습은 마치 어린이날에 장난감 가게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연상케 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빈티지 나이키 편집샵인 ‘더 컬처 PDX’ The culture PDX, 포틀랜드에서 시작한 부츠 브랜드 ’대너’Danners, 도심형 아울렛인 노드스트롬 랙Nordstrom rack, 애플스토어Apple store 등 내 지갑을 호시탐탐 노리는 쇼핑 플레이스들이 많았다. 특히 더 컬처 PDX는 나이키의 빈티지 상품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탐나는 상품도 많을뿐더러 사설 나이키 박물관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나이키 제품의 아카이빙이 잘 되어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같이 여행을 한 멤버들은 여기에서 하나씩은 다 득템 했다고 한다
물론 대도시인 뉴욕이나 시카고, 심지어 주변 도시인 시애틀보다는 전체적으로 쇼핑장소의 규모나 종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포틀랜드 광역권의 인구는 183만 내외로, 시애틀 광역권의 인구보다 150만명 정도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누구보다 가장 창조적이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만들고 소비하는 상품들이 무엇인지 둘러보고 사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소비세가 0%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