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보고 싶어서, 포틀랜드_여행 가서 운동 한 썰
포틀랜드 마라톤 참가하러 갔어요.
42.195km 풀코스 뛰고 왔죠.
'포틀랜드로 왜 갔어요?' 라는 물음을 종종 받으면, 대답하는 것 중 가장 단순하게 말 한 이유이다. 포틀랜드에서 하고 싶고 했던 것은 많았지만, 실제로 여행 중에 벌어졌던 가장 큰 이벤트이기도 하니까.
운동을 원래 잘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운동이란 건 관람하는 것 이외엔 엮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사람마다 비교우위라는 것이 있으니, 운동 말고 다른걸 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살았다. 살도 잘 붙지 않는 체질이었으니, 다이어트와 같은 실질적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20대 중반이 지나면서 운동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운동을 통해 다져진 건강한 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나의 생활 패턴을 건강하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한창 갈피를 못 잡았던 20대 중반의 생활에 변화와 루틴함을 더해보자는 마음으로 대학교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신경이 좀 있어야 하는 구기종목은 여전히 잘하지 못하지만, 단순히 반복하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운동은 그저 정확히, 꾸준히 하면 됐다. 생각보다 체형도 빠르게 바뀌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꾸준히 헀을 때, 피드백이 눈으로 즉각 보인다는 것이 즐거웠다.
러닝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하프코스를 완주한 2014년 가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면서 10,000m도 걸어본 적이 없던 내가 21.098km를 두 시간 동안 뛰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처음으로 받은 완주 메달은 그 증거품이었다. 이후 몇 가지 러닝 대회를 더 나갔지만, 첫 직장의 지방 근무와 부상 등의 이유로 운동과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3년 후 만나게 된 크로스핏과 러닝크루는 내 운동생활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격렬한 직장생활 속에서 찾은 더 격렬한 운동은 다시 한 번 나를 가다듬는 기회가 되었다.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하는 운동은 마치 수도와 명상 같았다. 머릿속에서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가쁜 숨과 땀, 그리고 나 자신만 남게 되었다. 일과 일상을 명확히 구분해주는 시간이 된 것이다. 복잡한 생각을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 러닝크루와 크로스핏은 그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일상을 잠시 미뤄놓고 도착한 여행지에서도 나와 같이 러닝과 크로스핏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까? 포틀랜드에서 시작할 첫 번째 풀 마라톤은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다행히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이 한 명씩 모였고, 우리는 포틀랜드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각자 서로의 일상이 있겠지만, 그 일상을 미뤄두고 서로가 서로에게 채워지는 경험을 이국에서 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 아쉽게도 계획했던 모든 운동을 하지는 못했다. 첫 풀 마라톤 완주 후, 크로스핏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틀랜드 마라톤을 함께했던 지영, 부경, 지혜, 순양, 진우, 봉준, 정찬, 그리고 나는 서로 운동과 여행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운동은 그래서 나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운동이 없었으면 이런 소중한 기억을 안겨 준 여행을 경험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번외 정보:
포틀랜드 마라톤
2019년 포틀랜드 마라톤은 10월 6일에 개최되었다. 메이저 마라톤인 보스턴/도쿄/런던/베를린/시카고/뉴욕 마라톤의 위상과는 매우 격차가 있는 로컬 마라톤대회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포틀랜드 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달릴 수 있었다 생각한다. (실제로, 그다음 주에 시카고에서 개최되는 시카고 마라톤을 참가하기 위해 워밍업 개념으로 뛰는 마라토너들도 꽤 많았다.)
포틀랜드의 주요 도심부와 지역들을 순환하며 달리는 코스였으며, 고저차나 코스의 정리 상태가 대형 대회에 걸맞은 깔끔한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코스 옆에서 파티를 하며 마라토너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모습은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또한 마라톤 대회 전날, 포틀랜드를 기반으로 하는 러닝클럽인 "스텀프러너스"와의 그룹 러닝도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들과 대회장에서 만나고 인사하며, 끝나고 함께 짧은 뒤풀이를 하며 대회의 소회를 함께 공유하는 경험 또한 매우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여행을 다니며 관광지나 유명 장소를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현지인들과 스킨십 하며 더 많은 정보와 교류를 진행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운동이 있다는 것을 전할 수 있다면 이 글의 취지가 잘 전달된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