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그 계곡의 개고기

by 함완


여름은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계절이다. 더위에 취약한 체질에 땀도 많이 흘리는 편이라 여름이 오려는 기색만 느껴도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혀를 빼놓고 헐떡이는 강아지처럼 모든 것들이 늘어져 있고, 시간도 그만큼 천천히 흘러가는 여름. 영영 지속될 것만 같던 이 계절도 어느새 말복이 지나며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복날이면 본가에서는 아버지가 닭을 직접 잡아서 삶아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어른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덕에 능숙한 솜씨로 닭을 잡았다. 아버지는 닭털과 피를 뽑아내고 깔끔하게 고기를 손질하는 잔뼈가 굵은 닭 장수였고, 노련하게 식탁과 선반을 만드는 목수였다. 때로는 보일러 호스를 깔아 시멘트를 깔끔하게 발라 온돌을 짓는 기술자이기도 했고, 무거운 냉장고나 침대도 혼자서 나르는 장사이기도 했다. 다른 집 아주머니들은 그런 아버지를 부러워했고, 그런 능란한 아버지 덕분에 엄마와 우리 삼 남매뿐 아니라 근처의 친지들까지 편하고도 넉넉하게 살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여러 계 모임을 했던 부모님은 복날이면 계원들과 계곡으로 피서를 다녀오곤 했다. 좋은 단백질원을 구하기 어려워 주로 쌀밥과 김치로만 끼니를 채우던 어려운 시절,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기에 당시 개고기는 단백질을 채우기에 좋은 에너지원이었다. 마당이 넓었던 우리 집 뒤꼍에서는 계원들과 함께 먹을 보신탕이 큰 솥으로 끓었다고 했다.


막상 여름마다 보신탕을 끓이던 엄마였지만, 어느 날 이후 엄마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엄마는 입에 대지도 않을 거라고, 개고기를 먹으면 손을 지진다고, 성을 갈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엄마가 누나를 임신했을 때였다. 엄마는 어떤 음식을 먹는가에 따라 뱃속의 아이 운명이 정해지는 것이라 믿었다. 아기가 까만 얼굴로 태어날까 봐 임신하고 나서는 짜장면도 먹지 않았던 엄마였다. 그렇게 음식을 가려먹을 정도로 조심했다.


추운 겨울 임신한 엄마의 배는 봄이 지나 여름이 되자 두둑하게 불룩해졌고, 뱃속에서는 누나가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에도 어김없이 복날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개를 잡는다는 말에 계곡으로 갈 채비를 했다. 엄마는 그해 뒤꼍에서 보신탕을 끓이지 않았는데, 떠난 생명이 혹여 찾아올 생명에 좋지 않은 기운을 미칠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집을 나서는 아버지에게 애원했다.


“가더라도 먹지 마요. 제발.”


그런 미신을 믿지 않는 데다 한 번 정하면 꺾이지 않는 고집을 가진 아버지를 붙잡을 방도는 없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애원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계곡을 향해 떠났고, 아버지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대, 게다가 계곡에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할 방도는 없었다. 해가 지고 난 후에 아버지가 배를 든든하게 채워 돌아오자 엄마는 질색했다.


“그 고기 먹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이럴 때 꼭 그걸 먹어야 해요? 제가 사정사정했잖아요.”


아버지는 괘념치 않았다. 인과론의 이치 아래 살았던 아버지는 엄마의 그런 믿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기술자, 장사꾼, 발명가로서 배웠던 삶의 교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십 년을 인과론의 세계에 살았던 당신도 먼 훗날 스스로 그 세계를 등지었는데, 엄마가 아픈 누나를 위해 굿을 했을 때 아버지는 묵묵히 엄마의 뜻을 따랐다.


아버지의 고집에 질렸던 엄마는 그날 이후 절대로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그 후로 정말 단 한 번도 개고기 냄새도 맡지 않았다.


“네 누나가 아픈 게,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변한 게 혹시 그때의 일 때문 아니었을까?”


엄마는 그때의 기억에 여전히 슬퍼했다. 누나의 엉클어진 삶이 그녀가 태어나기 전의, 엄마가 먹지도 않은 개고기 때문일 리는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잘못에서 시작된 것 아닐까, 당신이 막지 못했던 일에서 이 고통이 시작된 게 아닐까? 어머니는 자책을 멈출 수 없다.


누나를 보며 엄마는 자꾸 해서는 안 됐던 일들에 대해 떠올린다.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이라며 엄마는 오늘도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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