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보호자

by 함완

2021년 4월 14일.


의사는 수술실에서 두 팔에 가득 엄마의 일부를 들고 나왔다. 엄마의 작은 몸에서 저렇게 큰 게 나오다니 믿기지 않았다. 의사는 그것을 들고 덤덤하게 말했다.


“보호자분. 암이 생각보다 많이 퍼져 있었어요. 위 전부를 들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의사는 의사의 역할을, 엄마는 환자의 역할을, 나는 보호자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 던져진 엄마의 일부를 보며 엄마를 보호하고 있긴 한 걸까 하는 의문이 가득해졌다.


수술실에서 나와 엄마는 병실로 옮겨졌다. 진통제가 강력했는지 엄마는 생각보다 편안해 보였다. 보호자가 있을 수 없는 병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엄마가 건 전화에 마음이 무너졌다.


“옆에 여자가 그러더라. ‘아니 위까지 떼어내고 살면, 그게 뭐 사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나 항암 안 할래.”


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말에 엄마가 이상한 마음을 먹었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며, 그냥 죽겠다고 했다. 아침부터 눈물로 엄마를 달랬다. 엄마가 아닌 나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병원으로 바로 달려가 엄마를 안아주고 위로했다. 겨우 엄마의 마음을 돌렸지만, 난 엄마의 무엇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2년 뒤 엄마의 암이 재발했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암세포를 잡으려 여러 독한 약물들이 추가됐다. 옵디보, 5-fu, 옥살리틴으로 총 3개의 항암제로 항암제 칵테일 요법을 받게 됐다.


옵디보는 몸 안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서 암세포와 싸우게 한다. 5-fu라고 불리는 5-플루오로우라실은 암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정상 세포 내 영양분과 비슷하나 암세포가 이 약을 받아들였을 때 암세포의 성장을 방해하는 작용을 한다. 옥살리틴은 암의 DNA 변형을 일으키고 암을 죽인다고 한다. 이렇게 무서운 약들을 모두 같이 써도 암은 사라지지 않는다. 겨우 저지만 할 뿐이다.


엄마는 치매예방약도 먹고 있다. 이 역시 예방이라기보다 저지에 가까운데, 콜린알포세레이트가 주성분인 이 약은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양을 인위적으로 늘려 뇌신경 손상으로 저하된 신경전달 기능을 정상화한다고 한다. 의사는 엄마의 병을 알츠하이머라고도, 치매라고도 하지 않았다. ‘디멘샤’라고 했다. dementia는 상실(de)된 정신(ment)의 상태(ia)다. 엄마는 정신을 상실하고 있다.


엄마는 겁이 많았다.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리는 게 두려워 몇 번을 주춤거렸다. 지하철을 탈 때에는 카드를 어디에 대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했다. 그래서 엄마는 배움이 부족하다며 항상 숨어만 있었다.


엄마가 원하지 않았지만 가지게 된 것은 암이었고, 원했지만 가지지 못한 것은 앎이었다. 그리고 암과 치매는 얼마 남지 않은 그 앎마저 앗아갔다. 엄마는 기억이 없어지는 것도, 자신의 몸이 스러져가는 것도 차츰 견디기 어려워했다. 항암치료를 마치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7번째 항암치료를 받으러 엄마가 서울로 올라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 옆자리에 앉은 엄마의 얼굴은 어쩐지 담담해 보였다. 엄마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치료 그만 받고 싶어.”


또박또박 두 음절을 혀로 단단하게 누르며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선언했고, 협박했고, 절규했다. 기억은 증발하고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엄마의 마음에 결심이 섰다. 엄마는 평생을 누군가가 결정해 둔 삶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제 엄마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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