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서울에 올라올 때에는 초긴장 상태가 된다.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 엄마를 매번 모시러 갈 수도 없고, 누나도 병원을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도 엄마를 데리고 서울로 올 수 없다. 그래서 엄마가 혼자 기차를 타는 건 작전 수행하듯 이뤄진다.
엄마가 서울에 올라오기 며칠 전에 기차표를 온라인으로 예매해서, 아버지에게 예매 내역을 보낸다. 아버지는 역에서 온라인 예매권을 종이표로 바꾸고 엄마의 주머니에 잘 넣어준다. 기차가 도착하면 아버지는 엄마를 제자리에 앉히고 기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가 기차를 탔다고 나에게 전화를 한다.
여기서부터는 내 역할이다. 중간중간 엄마가 잘 오고 계신지 전화를 건다. “엄마가 내릴 역은 영등포 역이에요.” 엄마에게 한 번 더 상기시킨다. 수원역을 지나 엄마가 도착할 즈음이면 엄마에게 한 번 더 전화를 한다. “이제 내려야 해요.” 기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리면 나는 엄마를 찾는다. 익숙한 그 얼굴을 찾으려 미어캣처럼 고개를 여기저기 돌린다. 그리고 엄마를 발견하고 손을 잡는다. 긴장이 이제야 풀린다.
오늘도 정시보다 조금 늦게 플랫폼으로 기차가 들어온다. 열차가 멈추어 서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 엄마를 찾지만,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지난번 내 부탁을 기억하고 있을까?
“엄마, 나는 플랫폼에서 항상 기다리니까 플랫폼에서 나를 찾아야 해. 역사에 올라가면 안 돼요.”
저번에는 엄마가 플랫폼에서 나를 찾지 않고 사람들을 따라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이번에도 그랬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긴 송화음이 지나가고 음성메시지 안내로 넘어가기를 수차례,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사라지고 이제 몇몇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전화를 건다.
‘설마 못 내리신 건 아니겠지?’
엄마의 기억력과 인지력이 부쩍 떨어졌다는 사실에 좀 더 신경 쓰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혹시나 이번에도 역사 안으로 들어가신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올라가 본다. 저 멀리 가방을 뒤지며 뭔가를 찾는 엄마가 보인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
“엄마!”
울컥 분노와 슬픔이 몰려온다. 안심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쏟아붓는다. 엄마의 잘못이 아닌데 화를 낸다. 나를 찾지 못해서 올라왔다고,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엄마는 사정을 말하지만 나는 엄마를 놓쳤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가라앉는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다음부터는 내가 보이지 않으면 전화를 먼저 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사실, 내게는 화를 낼 자격이 없다. 엄마는 더 긴 시간을, 내가 엄마에게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현실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기다렸다. 나의 긴 부재가 끝나고 수년 후 엄마와 내가 재회했을 때 엄마는 나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그 슬픔의 시절을 딱 한 번 이야기하고는 다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에게 사라진 몇 년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그 깊고도 끝없는 영원한 지옥 같은 슬픔을 나는 무엇으로도 갚을 자신이 없다. 지금 엄마의 암 치료를 위해 애써본다 해도, 이건 비교조차 되지 않는 작은 몸부림일 뿐이다.
그저 엄마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