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가 꿈에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꿈에 나오는 날은 약을 먹지 않은 날이다.
엄마를 잃고 나는 신경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공허가 찾아왔다. ‘엄마’와 ‘공허’, 절대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 두 단어에 접점이 생겼고 합집합이 되었다. 당신을 가리키던 나의 수많은 말들이 당신에게 가 닿을 수 없다. 말들이 갈 곳을 잃자 마음도 휘청거렸다. 마음은 말들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약을 먹지 않은 날에는 술을 마셨다. 정정. 술을 마신 날에는 약을 먹지 않았다. 종종 술로 긴장된 마음을 풀고 싶었다. 취기에 마음을 맡긴 채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다. 그것은 죄였을까. 기분이 좋아도 되는지 난 알 수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을 조심스러워했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만 얄밉게도 해내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날이 늘어날수록 나는 꿈을 자주 꿨고, 엄마는 그곳에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엄마를 찾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꿈에서 다시 만났다.
엄마는 동네 계모임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선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맑고 환한 모습이다. 치매가 있는 엄마를 혼자 보낼 수 없어 계모임 식당까지 엄마를 모시고 가기로 한다.
어두컴컴한 집을 나오니 밖에는 환한 봄볕이 가득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짙다. 따뜻한 봄기운이 바람에 실려오고, 파릇파릇 피어나는 어린 잎들과 꽃들이 가득하다.
얼마나 상쾌한 꿈이었던지. 엄마가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떠나서였을까, 봄 속의 엄마는 너무나 생경하고 따뜻해 보였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의 손을 놓지 않지만 정작 위로 받는 것은 나다. 꿈은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한 것들로 가득했지만 엄마가 살아 생전에 내 손을 잡아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손을 잡고 있으면 그 불안이 가라앉는다.
식당에 가는 길이 이렇게 길었던가. 꿈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풍경을 바꾼다. 건물들이 사라지고 잔디밭이 생기고 얕은 숲이 펼쳐진다. 엄마의 모임장소에 영원히 도착할 수 없을 듯하다. 그 푸르름이라면 그게 더 나았다. 도착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엄마와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내가 보통 꾸는 꿈에서는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었다. 공간이 비틀리고 시간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내가 진짜로 원했던 건 식당 도착이 아니라 엄마와의 시간이었으니까.
엄마가 가던 길을 벗어난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돗자리로 가더니, 원래 자신의 것인 양 도시락에 있던 포도를 집어 먹는다. 나는 돗자리에 앉아 있던 주인에게 사과를 하고 엄마를 안는다. 엄마를 안고 가기로 한다. 엄마는 내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가볍다.
요의에 잠이 깼다. 볼 일을 보고 화장실에서 부리나케 돌아와 누워 눈을 감았다. 다시 엄마를 만나러 가려고 했다. 이렇게 하면 때로는 좀 전에 꾸던 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떠난 것인지, 엄마가 떠난 것인지 눈 감은 곳에는 엄마는 없었다.
감은 눈을 뜨고 천장을 보았다. 이제야 안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원하는 걸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꿈에서만큼은 엄마와 함께 걸을 수 있었다. 도착하지 못해도 괜찮은 길을. 봄볕이 따스한 어디쯤을.
나는 오늘도 약을 먹지 않을지 모른다. 술잔을 기울일지 모른다. 의사는 가능하면 술 대신 약을 먹으라고 했지만 그는 모른다. 꿈속 엄마의 손을. 그 손이 오히려 약보다 더 강력하게 나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내일은 엄마가 꿈에 나올까.
내일도 우리는 봄을 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