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Sep 05. 2020

일탈을 꿈꾸던 한 남편의 최후

육아대디의 버킷리스트


세상의 모든 초보 엄빠가 그러하듯, 딸아이가 태어나고 100일 동안 우리 부부는 참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흔히들 표현하는 '100일의 기적', 태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8시간 넘는 통잠을 자는 그날이 오기까지 시련은 멈출 줄 몰랐다. 수시로 잠을 끊어서 자는 고통은 물론이고, 아이의 울음에 도무지 해결책을 찾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로 향하고 있던 즈음이었다. 감사하게도 '100일의 기적'을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경험하고, 조금씩 육아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육아에 지친 아내는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충주 친정집에 내려가고 싶어 했다. 그럴 법했다. 엄마가 된 아내였지만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그 말처럼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을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결국 3박 4일 일정으로 충주에 내려가기로 했고, 당시 스케줄 상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나는 아내와 아이를 충주에 데려다주고 바로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내도 출산 이후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보내는 3박 4일이 뜻깊었을 것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하루도 제대로 된 잠을 이루지 못했기에 내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은 크나큰 선물이었다.

 갑작스레 생겨난 자유 시간에 어쩔 줄을 몰랐다. 내게 주어진 어마어마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꿈에 부풀어 무엇을 할지만을 골똘히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육아를 하면서 늘 마음에 품고 있던 버킷 리스트가 있었다. 내게 자유시간이 단 하루라도 주어진다면 꼭 그것을 하리라 벼르고 또 벼르고 있었다. 바로 그것은 바로 참치에 소주 한잔, 혼술이었다. 어찌 보면 별 거 아닌 그 작은 소망이 어느덧 나의 가장 큰 꿈이 돼있었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첫날밤은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했기에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게 남은 시간은 무려 2박 3일의 프리 타임. 퇴근길에 야심 차게, 드디어 꿈을 이루기 위해 평소 자주 가던 참치집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빛깔의 탐스러운 참치 회를 테이크 아웃하고 편의점에서 소주를 한 병 샀다. 그리고 차를 내달려 이내 집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날 내 차는 충주에 내려가 있었기에 아내 차를 가지고 출근을 했다 퇴근했는데 지하주차장에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아내 차를 오랜만에 모니 뭔가 거리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주차를 하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범퍼 쪽을 기둥에 긁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서 내려 참치와 소주가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소중하게 들고 범퍼 쪽을 바라보려고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이었다.

"빡!!!"

 빨리 올라가서 참치에 소주 한잔할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나는 급하게 허리를 숙였고, 내 허리는 그때, 하필 그때, 그 수많은 시간 중 하필 그 순간에 완전히 나가고 말았다.


 굽혔던 허리를 다시 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사실 허리라는 놈은 재채기를 심하게 해도, 기침만 해도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왜 그 시점이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그동안 밤을 지새우며 아이를 안아 달래느라 당연히 운동할 시간은 없었다. 허리가 나갈 이유는 쌔고 쌔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게 하필, 그날 터진 것이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집으로 올라갔다. 지하주차장에서 집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가 마라톤 코스처럼 멀게 느껴졌다.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드러눕고 말았다.

 너무 억울했다. 내 소중한 꿈이 이렇게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허리를 부여잡고 엄청난 정신력을 발휘해 일어섰고 어렵게 어렵게 겨우겨우 참치 상을 차렸다. 소주를 마시면 통증을 잊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단 한 잔을 마셨다.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잔, 석 잔을 들이부어도 아픔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혼참치 혼술의 꿈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반도 먹지 못하고 드러눕게 되었다.


그 날의 참치


 온통 푸른 꿈으로 부풀었던 나의 3박 4일. 나는 온종일 방에 드러누워있었다. 회사에도 사정을 말하고 모두 휴가를 냈다. 스케줄도 모두 취소하고 집에 누워 소중한 자유시간을 그렇게 허무하게 날려 보내고 말았다.

 

 아내와 딸이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너무 심하게 좋아해서 벌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적당히 좋아할 걸. 일탈을 꿈꾸던 한 남편의 꿈은 결국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다짐했다. 다음에 다시 이런 기회가 온다면 적당히 좋아하리.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적정 선에서 즐기리.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으리.

이전 18화 결혼 6년 만에 처음으로 각방을 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