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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ul 13. 2020

결혼 6년 만에 처음으로 각방을 쓰다.

아내와 싸우니 모든 게 의미가 없었다.

 여태껏 없었다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역대급 싸움이었다. 누구는 유리창도 깨고 장롱도 무너뜨리며 싸운다고들 하던데 우리는 그에 비하면 항상 조곤조곤 싸우는 편이었다. 그리고 4살 딸아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 앞에서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왜 그랬을까.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올라오는 것들을 마구마구 쏟아댔다. 아내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상황이 조기 종료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그대로 방출했고, 그 결과 우리는 결혼 후 처음으로 각방을 쓰게 됐다.

 그리고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마디의 말도 서로 건네지 않았다. 출근 전 딸아이를 깨우고 밥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은 아내가, 퇴근 후 목욕, 저녁밥, 재우는 건 나 혼자 했다. 한 집에서 각자 아이를 돌보는 시간에 일절 서로 터치하지 않았다. 딸을 보지 않는 사람은 남는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싸운 바로 다음날엔 서로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아서 그랬는지 미안하기보다는 굉장히 효율적인 느낌이 들었다. 각자 가사를 정확히 50대 50으로 나눠서 하니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

 둘째 날부터는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가는 게 두려워졌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불편함이 밀려왔다. 일이 일찍 끝났는데도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셋째 날엔 감정이 가장 고조되었다. 모든 일에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아내와 싸우고 각자 살아가니 눈앞에 의미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즐겁게 하던 방송도 하기 싫어졌다. 행복하게 쓰던 글도 이어가는 의미가 없었다. 밥을 먹어도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일 뿐 즐길 수 없었다.

 그러다 네 번째 날 저녁을 맞이했다. 역시 아내는 일찌감치 저쪽 방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잘 준비를 하던 네 살 딸아이가 불쑥 말했다.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말을 드디어 꺼내는 듯했다. "엄마는 또 저기서 자? 하연이는 셋이 자는 게 좋은데....... 셋이 잘래! 셋이!"

 억장이 무너졌다. 딸아이의 이 한마디가 결정타였다. 이제 더 이상 이러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많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일이 더 지났다. 그리고 토요일, 싸운 지 정확히 7일째가 되었다. 2년 연애에 더해 6년의 결혼생활, 만난 지 8년이 되었는데도 부부싸움 후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는 언제나 어려운 과제다.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마치고 상암동에 도착했다. 집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화해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아내가 얼마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보, 나 꽃 받고 싶어."

 꽃집에 가서 아내가 좋아할 만한 꽃을 사서 집 지하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런데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사과를 안 받아주면 어쩌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등 온갖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언뜻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냥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냥 생각나는 말을 하기로 했다. '진심을 전하면 되겠지 뭐.'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현관에서 아내에게 꽃을 건네며 말했다.

"여보 미안해.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주차장에서 올라오는데 1시간 걸렸어. 꼭 받아줘야 해."

 아내는 나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눈물이 맺혔지만 창피해서 들키지 않으려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안아준 채로 한마디 했다. "나도 미안해 오빠. 근데 그때 나 완전 말로 때려 맞는 줄 알았잖아. 큭큭"


 허겁지겁 저녁을 함께 먹고 싸움 뒷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제야 안부도 물었다. 그리고 함께 셋이 아이를 재우러 안방으로 향했다.

 "우와! 우리 셋이 자는 거야?" "응. 하연아 엄마, 아빠가 미안해. 셋이 자자."

 모든 긴장이 풀어져서였을까. 9시에 함께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내도 딸도 마찬가지였다. 곧장 잠들어버린 우리는 다시 셋이 안방에서 아침을 맞이했고, 딸아이는  그동안 못 이룬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다른 때보다 더 쌔끈쌔끈 곤히 잘 자는 모습이 엄마 아빠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 같았다.

 아내와 화해하니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두컴컴하던 집 안에 조명이 하나씩 켜지며 환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삶의 의미를 되찾은 기적의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 올라온 화해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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