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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ug 02. 2020

하필 아내의 생일 새벽에 날아온 그녀의 문자 한 통

서프라이즈~~!!


아내의 생일이었다. 매년 하던 대로 양질의 소고기로 미역국을 끓였다. 어머니는 한우 소불고기를 해 보내주셨다. 아내의 생일 즈음 맞춰 예매해둔 뮤지컬을 며칠 전 보고 왔다. ‘HAPPY BIRTHDAY' 문구는 진작부터 붙여놓았다. 생일 전날부터 매년 하던 대로 파티를 시작했다. 파티라 해봐야 케이크에 초 세워두고 불 붙이고 노래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걸 최소 3번 이상 한다. 생일 전날 저녁과 당일 아침, 당일 저녁 이렇게 3번.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할 때마다 기분 좋으니까.

 어느 집이나 가족의 생일은 1년에 한 번 있는 가장 확실한 행복임은 분명하다. 그 행복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생일 선물로 강렬하게 현금을 원했던 아내에게 두툼한 봉투를 쥐어줬다.

 그렇게 간단한 전야제를 마치고 우리 세 식구는 평소처럼 잠이 들었다. 나는 평소 워낙 예민해서 새벽에 자주 깨는데, 그날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자다 깨서 몇 시인지 보려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시간은 새벽 2시쯤이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하필 아내의 생일 새벽에 날아온 문자 한통

 "차주분 라이트가 켜져 있어서.. 배터리 방전될까 봐 연락드려요.^^ 주무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문자 합니다~"

 친절한 이웃 주민의 제보였다. 사실 나는 워낙 예민하고 과도할 정도로 꼼꼼해서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차량 관련된 건 사소한 것도 하나하나 체크하고, 휴대전화나 지갑 같은 귀중품도 어딜 가든 계속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성격이다. 아주 사소한 약속이나 그냥 던지는 말도 꼭 메모를 해서 지켜내는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내가 차 라이트를 켜놓고 올라왔다니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어찌 됐든 내 차가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사진까지 첨부해서 문자를 보내주신 분이 있으니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 2시에 내려가려니 혹시나 아내가 걱정할까 봐 살짝 깨있는 틈을 타 말했다.

"여보 차에 불이 켜져 있대. 방전되면 안 되니까 나 지하주차장에 잠깐 내려갔다 올게."

"응응 응"

비몽사몽인 아내의 대답을 듣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려가 확인해보니 내가 자동차 키를 뽑는 걸 깜빡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스로도 너무 놀랐다. 내가 차키 빼는 걸 잊다니....... '벌써 치매가 오나?' '뇌가 망가졌나?' 별 생각을 다 하면서 시동을 다시 걸어봤고 이상이 없는 걸 확인했다. 그리곤 다시 집으로 들어가니 당연히 잠은 다 깼다. 거실에서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때우다 이른 아침 다시 쪽잠을 취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미역국과 함께 아침상을 정성껏 다시 차려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뜸 아내가 실망 반 걱정 반, 농담 반 진담 반, 덤덤하게 반 기대 반으로 말했다.

"뭐야? 오빠. 왜 아무것도 없어?"

"응? 뭐가? 없어?"
"오빠 새벽에 서프라이즈 준비한 거 아니었어? 응? 그런 거 맞지 응응?"

상황 판단이 안 된 나는 도통 무슨 소린지 몰라하며 대답했다.

"응? 무슨 서프라이즈? 어제 선물도 줬고 미역국도 끓여주고 파티도 했잖아. 지금도 또 케이크 초에 불 붙이면 되지......."

말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뿔싸. 내가 새벽에 주차장에 내려갔다 왔지.......'

"여보 그거 진짜 라이트 켜져 있어서 내려간 건데....... 여기 봐봐 문자 와있잖아."

"뭐야..... 쳇. 난 그거 당연히 거짓말인 줄 알았지. 오빠가 차 라이트를 켜놓고 올리가 없잖아. 서프라이즈 어딨어! 서프라이즈 내놓으라고! 에이....... 괜히 기대했네......."


 평소 꼼꼼하고 예민하며 뭔가 하나만 제대로 안돼 있어도 계속 신경 쓰는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아내다. 그런 내가 새벽에 라이트가 켜졌다고 내려간다는 건 거의 99% 뻥이라고 생각할만하다. 더군다나 우리 집 차는 스마트키가 아니라 키만 잘 뽑았다면 라이트가 들어와 있을 가능성도 낮다. 그러니 내가 무언가 자신의 생일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거란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나는 왜 하필 아내의 생일에 그런 실수를 했을까. 그 실수만 아니었어도 못해준 게 하나 없는 아내의 생일이었을 텐데. 사람의 기대 심리라는 것에 못 미치게 되면서 다소 부족하게 생일을 챙겨준 꼴이 돼버렸다.

 아내가 처음부터 아주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나의 평소 같지 않은 행동을 보며 자꾸 기대감이 커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이래저래 찜찜한 아내의 생일이었다. 그래도 건조하던 집안에 재미난 추억거리 하나 생긴 셈 치면 나쁘지 않았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다시 뭔가를 준비하기엔 이미 산통은 깨진 거라 그냥 아내에게 능청스럽게 한마디 하며 별 것 아니지만 별 것이 돼버린 이 사태를 수습해본다.

"여보 이번엔 이렇게 돼버렸고, 내가 다음 생일엔 꼭 서프라이즈 해줄게. 흐흐흐. 이번 생일은 이걸로 끄읕!"


다음엔 꼭 서프라~~~이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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