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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y 13. 2020

하늘 같은 선배에서 집안 서열 최하위로의 추락

선후배가 부부가 되면 벌어지는 일

아내와 나는 2012년 후배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페이스북을 통해 아내를 처음 보게 된 나는 타 사 후배를 통해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아나운서 선후배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부부에서 한 아이의 엄마, 아빠로 서있는 자리가 바뀌게 되었다.


 아나운서들은 위계질서가 강하다. 선후배 관계가 워낙 엄격하기에 여남을 불구하고 1년 차이만 나도 군대 상관 못지않게 깍듯하게 모신다.

 아내와 나는 나이는 7살 차이, 아나운서 입사로 따지면 5년 차이가 났는데 아나운서 세계의 특성상 나는 아내에게 하늘 같은 선배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썸을 탈 때도 우리의 관계는 아나운서 선후배라는 밑바탕에서 출발했다. 나는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소위 말하는 연차 차이가 제법 나는 어려운 선배였다. 그렇기에 아내는 항상 극존칭을 사용했다.


“선배님, 오늘 어디서 뵈면 좋을까요?”

“많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기운 내세요 선배님.”


 우리가 사귀게 되었을 때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조금씩 친해지면서 ‘선배’라 부르던 호칭이 ‘오빠’가 되었을 뿐 우리 관계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아나운서 선후배가 가장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빠, 오늘은 어땠어요?”

“어제 방송 진짜 오래 하시던데 피곤하지 않으세요?”


2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한 집에 살게 되니 격식과 허물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말투보다는 주로 친구들에게 쓰는 말들이 더 많이 쓰이게 되었고 부부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서로에게 가시 돋친 말들도 쏟아내기 시작했다.  


“또, 또, 또! 또 저런다. 너만 잘났지 아주?”

“아니 진짜 왜 그래? 또 나만 잘못한 거야?”


딸아이가 태어나자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제는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아니 오빠! 이건 좀 이렇게 하란 말이야.”

“왜 맨날 그래?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5년 위 하늘 같은 선배, 7살 위의 듬직한 오빠에서 집안 서열의 최하위로 추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8년.


 아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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