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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un 08. 2020

여보, 나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엄마 오늘 집에 안 와?


퇴근 시간을 몇 시간 안 남겨두고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 나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은 물론 다급함마저 느껴졌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층에 계신 부장님 따님이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었나 봐. 아까도 몇 번 마주치고 엘리베이터도 같이 탔거든....... 회사도 난리 났다.”

“어? 뭐라고? 헉....... 여보 마스크는 쓰고 있었어? 이거 어떡하지. 큰일이네.......”




 짧은 순간 참 많은 생각이 오갔다. ‘코로나가 참 가까운 곳에 있구나.’ 워낙 집돌이, 집순이인 우리 부부이기도 하거니와 그동안에도 지침을 충실히 따르며 집, 회사, 집, 회사만 반복했으니 ‘우리는 괜찮겠지’라는 생각만 했던 터였다. ‘우리 가족과는 먼 곳의 이야기겠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기에 그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어찌 됐든 상황은 벌어졌고 아내와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내가 회사 숙직실에서 자는 것. 하지만 그러면 다른 회사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또 집에 오자니 남편인 나와 4살 배기 딸아이, 딸을 돌봐주시는 고령의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다. 또 다른 제3의 장소를 찾으려 해도 그 장소에 계신 분들을 생각하면 그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아내는 집이 있어도 집에 선뜻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회사에 더 머무를 수도 없는, 그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아내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의 밀접 접촉자의 접촉자인데, 이런 경우에는 확진자와 직접 접촉이 아니기 때문에 찜찜하기는 해도 집에 돌아가는 것이 맞는 행동이었다. 그래도 워낙 걸리는 점이 많았기에 여러 차례 전화 회의를 한 끝 후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여보, 여보는 하연이 자고 나면 집에 와서 끝 방에서 자, 그리고 하연이 일어나기 전에 나가는 걸로 하자. 그 방은 우리가 절대 안 들어가고, 화장실도 따로 쓰면 되지 않을까?”

“응. 그래. 나도 그 방법밖에 없을 거 같아. 집에서도 마스크 하고 장갑도 껴야겠어. 하연이 자면 톡 주라. 그때 들어갈게.”


 전화 한 통으로 매일 한 방에서 생활하던 가족과 순식간에 생이별을 하게 됐다. 물론 지난 1월부터 코로나 19로 희생된 수많은 분들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우리는 우리보다 딸 생각에, 칠순을 넘기신 부모님 생각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상황이 발생하고 가족 중 그 누구도 아내와 접촉하지 않았다는 것. 아내를 생각하면 이걸 다행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될까 싶지만 다행은 다행이었다.


 참 복잡한 감정이었다. 영화에 보면 전염병에 걸린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나온다. 그 사람들을 보며 참 멋지고, 사람이라면 저런 상황에 당연히 저렇게 움직이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 왔다. 비슷한 상황을 상상도 많이 해봤고, 그때마다 답은 하나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에 기로에 놓인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옆에서 보호하겠다는 것.

 하지만 그 생각에는 하나 빠진 것이 있었다. 바로 3년 전 태어난 4 살배기 딸아이였다. 3년 전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바뀌었다.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는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요 부모님도 아니었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이 존재는 아마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아내에게 참 미안했다.

“여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들어와! 여보랑 나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

외쳐야 정답인 것 같았는데,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근길, 앞 차가 뒷 창에 큼지막하게 붙여놓은 문구 하나가 평소보다 더 큰 의미로 마음에 꽂혔다.

 ‘사고가 나면 아이 먼저 구해주세요.’

 내가 아내의 상황이 되어도, 아내가 또 나의 상황이 되어도 절대적인 답 하나는 변하지 않을 거 같다. 우리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 말이다.


 집에 들어와 잘 준비를 하고 안방에 누우니 아무것도 모르는 딸내미가 물었다.

“아빠, 엄마는? 엄마는 왜 안 와?

“응. 하연아 엄마 당분간 못 볼 거 같아. 엄마가 아야 할지도 모르거든. 그동안 아빠랑 할머니랑 재밌게 놀자. 알았지?”

“셋이 자고 싶은데....... 하연이는 셋이 자는 게 좋아.......”

“응. 엄마 몇 밤 자면 곧 올 거니까 걱정 마. 알았지? 얼른 꿈나라 가자.”


 딸이 잠들고 나서 톡을 확인하니 10분 전 즈음 톡이 와있다.

“오빠, 나 집에 간다. 오보였어.”

“부장님 딸이 확진자와 접촉한 게 아니고, 딸이 다니는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온 거래. 회사도 이제야 정확히 정리해서 알려주네....... 아무튼 갈게!”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내와 아내 회사 사람들이 무사한 게 다행이었고, 아내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더 느끼지 않아도 되니 그것도 참 다행이었다.


 딸과 함께 곯아떨어지던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아내를 꼭 보고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딸이 워낙 예민해서 잘 때 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면 종종 깬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재우느라 지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사소한 힘듦 따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아내가 들어와서 시끄럽게 도어록을 따고, 맨날 하는 그 말을 빨리 외쳐줬으면 좋겠다.

“여보! 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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